Ep.04 먹는 것에 진심인 나의 이야기

할머니 입맛과 나의 두려움

by 자청비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이 드러나고, 일을 하다 보면 아직도 미숙하다는 걸 느낀다.

그런 모습이 싫을 때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나이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는 것도 늘 그랬다.

또래 친구들이 햄버거나 피자를 좋아할 때, 나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더 좋아했다.

속이 안 좋다고 하면 할머니는 약 대신 늘 청국장을 끓여주셨다.

신기하게도 청국장을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해지고 아픔도 사라졌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밥상에서 자라서인지 나는 한식을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세상에는 맛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김치는 여전히 내게 필수였다.

아빠를 따라 중국에서 살던 시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 김치찌개였는데, 신기하게도 5년 동안 질리지 않고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떡볶이다. 점심에 떡볶이를 먹고 저녁에도 또 먹을 수 있을 만큼, 떡볶이는 내게 식탁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임신이라는 특별한 시기는 나에게서 먹는 기쁨을 빼앗아갔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7개월 가까이 이어진 입덧은 너무나 가혹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음식이 있는데,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매일 울며 지냈고, 입덧이 끝난 후에는 미친 듯이 먹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상황은 같았다.


그 무렵 병원에 계셨던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가면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해~.”


그러나 나는 임신 6개월 무렵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입관과 발인을 따라다니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단 한마디였다.

“내가 먹고 싶은 거 해준다면서…”


며칠 뒤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구루마에 짐을 가득 싣고 오셔서 식탁 위에 음식을 한가득 올려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먹고 싶은 거 참지 말고 다 먹으라 했지!”


놀라우면서도 슬프고, 기뻤다.

천국에 가셔서도 나를 걱정해 주신 게 분명했다.

이 꿈을 꾼 뒤, 둘째의 입덧은 조금씩 끝나갔고, 나는 그것을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두려움은 나에게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단순한 마음의 상처가 아니라, 고칠 수 없는 병이나 긴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아픔 말이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줄 알았지만, 사실 내가 두려워한 건 죽음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작은 증상에도 과하게 반응하며 인터넷에 검색하며 상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암’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아이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어둠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고, 조금씩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할머니 입맛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할머니가 아파 돌아가신 걸 봐서

아픔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하지만 이것도 살다 보면 많이 맞닥뜨려야 할 부분이라는 걸 잘 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잘 챙기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되어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