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여행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MBTI에서 J형인 나는 여행 한 번 가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누군가 “여행을 얼마나 다녀봤냐”라고 묻는다면, 많이 가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다.
휴가 말고 진짜 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건 12년 전, 남편과 함께 호주에서 보낸 열흘뿐이었다.
그때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달리며 스쿠버 다이빙, 스카이 다이빙을 즐겼다.
설레고 자유로웠던 그 시간은 첫 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 어느 정도 크면 꼭 함께 여행하자고 다짐했는데, 벌써 12년이 흘렀다.
나에게 여행이란 큰 계획 없이 배고프면 먹고, 쉬고 싶으면 쉬는 그런 시간이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아이들과 필리핀을 다녀오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휴가일 뿐 내게는 여행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정말 멀리 떠나야만 여행일까?
사실은 매일이 여행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한 모험이고, 변수 가득한 여정이니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늘 긴장 속에 살아왔다.
예전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해내는 ‘프로 멀티러’였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멀티가 불가능해졌다.
처음엔 내가 둔해진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내 뇌의 신경망 한쪽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붙들려 있었다.
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무의식 중에도 늘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학교는 잘 갔는지, 수업은 잘 듣는지, 친구들과 문제는 없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무의식적으로 품고 산다.
그러니 다른 것엔 집중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내 뇌의 한 부분을 아이들이 다 가져가버린 것이다.
매일의 일상이 여행이어도 여전히 진짜 여행이 그립다.
아이들이 싫어서도, 벗어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걱정 없이 다녀오고 싶은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눈 뜨고 싶을 때 눈을 뜨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그런 여행.
어쩌면 나는 자유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고,
시간이 되면 아이들 스케줄을 읊고,
끼니를 챙기며, 상태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지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자유란 무엇일까.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유를 누려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안다.
오늘을 잘 마무리하는 것.
아침에 눈을 뜰 때 감사로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무탈하게 지낸 하루를 감사로 끝맺는 것.
그렇게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내일 또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진짜 자유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