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사랑은 변한다

가벼운 설렘이 아니라 견고한 사랑으로

by 자청비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특히 부모님 이야기는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잔잔한 듯 보이지만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첫째를 낳고도, 나는 엄마의 사랑을 잘 몰랐다.

할머니와 유대감이 깊었던 나는 첫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머니에 대한 사랑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내가 영글어진 것인지 어느 날 부모님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의 말과 행동이 잘못된 사랑 표현 방식이었다는 것을.

엄마도 사랑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 방식밖에 알지 못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 스스로의 시간을 핑계로 방치할 때가 있었다.

만 하루를 내버려 두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중하면,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야속하게 흘러간다.

한 번은 이모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아프면 크는데, 어른이 아프면 늙고 병든 거야.”

슬프면서도 현실을 마주하는 말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했는데, 커가면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엄마 딸, 아들이라서 엄마는 너무 행복해. 고마워. 사랑해.”


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워주신 할머니.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엄마 아빠 회사에 부도가 났다. 가정 형편은 어려워지고, 엄마는 우리에게 공부만 하라고 했다.

오백 원짜리 컵 떡볶이조차 사치였다.

공부도 안 되고 성적은 바닥이며, 부모님께 도움이 안 되는 딸 같아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 중국으로 떠났다.

그때 나는 ‘나’만 보았다.

할머니의 슬픈 눈빛을 뒤로하고, “나중에 잘해드리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외면했다.


그러나 현실에 치여 살다 보니 할머니는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게 되었다.

첫째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둘째 임신 6개월 차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라도 병원으로 달려가 할머니 손을 꼭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할머니, 항상 내 편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게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올해 결혼 12년 차가 되었다.

처음엔 설레고 심장이 떨려 말조차 제대로 못 했다.

어떻게든 “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한다”라고 표현하려 애썼다.

그때 주고받던 메시지를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지금은 어떠한 떨림도, 설렘도 없다.

사랑의 표현도 가끔씩 할 뿐이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하는 전우애 같은 건 아니다.

나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가족이니까, 부부니까 더 애틋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예전 같은 심장 떨림은 없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견고함이 생겼다.

가볍고 뜨거운 사랑은 사라졌지만, 무겁고 단단한 사랑이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함께하는 게 좋고, 가끔씩 어렵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오늘도 가족을 위해 수고해 줘서 고마워. 변함없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나도 많이 사랑해.”


사랑은 변한다.

진짜 사랑은 가벼운 설렘이 아니라, 견고함 속에서 깊어져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