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배움의 끝없는 욕심

바쁘고 정신없는 게 내 삶

by 자청비


2021년 여름, 나는 ‘번역’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번역 공부에 매진했다.

현업 번역가들이 가르치는 수업에 들어가 미친 듯이 공부했고,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젊었을 때 시작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함께 더 치열하게 몰두했다.

분야별로 도전하며 번역업계에 기웃거렸지만, 이 길이 과연 내 길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점점 커졌다.


아이들을 돌보며 공부를 이어가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버티다 결국 나는 번역을 내려놓았다.

몇 시간을 쏟아부어 번역한 결과가 손에 쥔 몇 만 원이 전부였을 때, 현실의 무게를 절감했다.

무엇보다 나의 실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번역을 놓아도 다른 공부를 이어갔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주변에서 “넌 늘 무언가 하고 있네, 참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잘 몰랐는데, 그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면,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었다.

바쁘게 사는 것이 나를 살게도 했지만, 때로는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늘 조급하게, 여유 없이 살아가는 걸까?’ 하는 고민이 내 마음을 스친다.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지만, 결국 나의 공부를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맛보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번역에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덕분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득이었다.


책을 읽으면 뇌가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한때는 ‘내가 지적 허영심이 강한 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배움으로 나를 채우는 일이 곧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20대에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물론 그런 생각은 든다. 그러나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에 후회는 없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우울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자라 내 손길을 덜 필요로 하게 되었기에 오히려 편하다.

또래들이 이제 막 임신과 출산, 육아의 어려움 속에 있는 걸 보면서, 나는 그저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며 나의 손이 자유로워진 만큼, 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늘 바쁘게 살고, 여유가 없어 보이더라도, 나는 결국 이런 삶을 선택할 것이다.

쓰는 삶, 배우는 삶, 나누는 삶.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이 길에서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모습인 듯하다.


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사서 쌓아두고 보관하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빠르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독서법이다.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 밀리의 서재에 책을 담아두는 일만으로도 욕심이 채워진다.


책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본다.

잊고 싶은 과거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책을 읽고 쓰는 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곧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나를 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도 지나온 길 위에서 아쉽거나 놓아버린 무언가가 있나요?

그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저처럼 언젠가 발견하게 되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