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화재경험
기부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째다.
내 아이와 같은 나이를 가진 아이를 컴패션에서 후원하고 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삶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 후원만큼은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끊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책임감에서라도 그럴 수 없고, 또 끊고 싶지도 않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 나는 그 아이에게서 진심을 느낀다.
내가 해준 건 작은 후원뿐인데,
그 아이는 매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아이가 내 아이처럼, 같은 세상을 누리고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 후원할 것이다.
나는 건강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건강한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하지 않은 음식은 왜 그렇게 맛있는 걸까.
몸에 좋은 비타민과 해독주스를 챙겨 먹으면서도
몸에 나쁜 음식 앞에선 쉽게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몸이 크게 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수면도 내겐 중요하다.
7시간은 자야 마음이 안정되고, 하루를 견딜 힘이 생긴다.
아침엔 늘 레몬즙과 소금을 섞은 물을 마신 뒤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며, 나의 주스를 준비한다.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다.
최근 가계 사정이 나빠지면서,
‘내가 집에서 줄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결국 답은 식비였다.
우리 가족은 먹는 양이 많다 보니,
식비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가계부를 새로 사고,
9월부터 식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외식은 단 한 번 뿐이었다.
명절이 길었던 10월에는 식단 짜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얻은 반찬과 냉장고 속 재료로 버텼다.
그렇게 절약하며 지내다 보니
조금은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짐했다. 반드시 다시 재개하리라고.
사람은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유가 사라지면
주변을 돌보는 마음의 시야도 함께 사라진다.
안 그래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대인 관계가 매우 좁은 나였다.
이럴 때면 나는 스스로가 너무 쪼잔해지는 것 같아 싫었다.
어릴 땐 공짜를 좋아했지만,
살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누군가의 호의도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 후로는 여유가 있든 없든,
받을 생각 없이 베푸는 삶을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불이 났다.
주차장 필로티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내 차 번호로 연락해
차를 빼라고 전화해 주었고, 나는 급히 내려갔다.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내려갔는데,
1~2분 사이에 불길은 이미 내 차를 덮고
이웃의 차와 1층까지 번지고 있었다.
눈앞의 불은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이었다.
계단에 쪼그려 앉아 위로 올라가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 찰나에 복도는 이미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본능적으로 머리와 입을 감싸 쥔 채
뜨거운 불길 속을 뛰쳐나왔다.
천장은 녹아내리고, 펑펑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으며,
떨어지는 잔여물에 맞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와 자력으로 탈출한 첫 사람이 되었다.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차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놀란 탓에 말이 엉켜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영상으로 상황을 보냈고,
남편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달려와주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질 만큼 강했다.
그 장면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정신이 나간 듯 웃기도 하고,
횡설수설하며 현실을 붙잡으려 애썼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불길도 금세 잡혔다.
하지만 피해는 컸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건 대부분 ‘타인’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도와주었고,
지인들은 자기 집을 내어주거나 밥을 사주었다.
아이들 학교 선생님은 결석을 이해해 주었고,
학원과 어린이집에서도 한 달간 배려해 주었다.
그 모든 손길이 감사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사람에게 상처받아 닫힌 채 살았던 내가
사람으로 다시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짐했다.
앞으로도, 여유가 있든 없든,
베풀며 살아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