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의 소중함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건 추억을 함께 만들지 못했다는 것일 게다. 내가 떠난 후에도 아이가 되새겨가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지혜의 주머니.' p300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위지안]
예전에 오은영 박사님이 대장암 수술을 앞두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혹시라도 이 수술이 삶의 마지막이 될까 봐, 아들과 놀이동산에 한 번이라도 더 갈 걸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했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추억을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걸, 그때 새삼 깨달으셨다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과 추억을 잘 쌓아왔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미취학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과 함께하려 애썼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점점 아이들을 방임했다.
우울증과 여러 사건을 겪으며, 나는 완전히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마다 자책하며 울고, 낮에는 버럭 화를 내며 반복되는 날들.
그런데도 아이들은 괜찮을 거라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정감을 느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온전한 ‘함께’를 원했음을 이제야 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동굴 밖으로 나왔고, 아이들의 마음도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을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사이 아이들은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이제는 긴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
단 30분이라도 대화하고, 하루 한 장씩 쪽지 편지를 써서 등교 가방에 넣어주는 일로 ‘함께함’을 이어간다.
그 쪽지 습관은 어느새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어릴 적 나는 정서적 안정감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나’가 되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건, 내 안의 쓴 뿌리의 상처가 자극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사실이었다.
이 쓴 뿌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어릴 적의 나를 이해하고, 그때의 어린 나를 품어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는 게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모든 일을 끝내고 나면, 마음속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잔잔한 뿌듯함이 밀려온다.
아마 그게 내가 스스로를 다시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닐까.
삶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하루를 소중히 보내려 애쓴다.
언젠가 내 삶이 끝나더라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과 함께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남길 진짜 추억의 형태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