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불안 속에서 찾은 안정감

불안함이 있어야 안정감이 찾아오는 나의 삶

by 자청비

삶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나는 죽음 그 자체보다, 아파서 죽어가는 과정을 더 두려워한다.

누군가 암이나 불치병 이야기를 꺼내면 여전히 숨이 막히곤 한다.

병에 걸려 고통받는 과정이 내 안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불안은 어릴 때부터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늘 아프셨지만, 어른들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오시면 “괜찮아졌다”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돌보며 “병은 한 세대를 건너 나타난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은 어린 내게 알 수 없는 불안을 심어주었다.


결혼 전까지는 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결혼하고 호주에 잠깐 가 있을 때 남편이 크게 앓아누웠었는데, 몸살감기였다.

호주에선 병원을 쉽게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약과 유기농 먹거리에 매달리며 밤새 불안에 떨었다.

그 경험이 내 시선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불안은 더 커졌다.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을 짓눌렀다.

게다가 동시에 할머니의 암 투병이 시작되었다.

시댁의 도움은 거의 없었고, 친정엄마도 할머니 간호에 전념하느라 나를 도울 수 없었다.

나는 홀로 육아서를 찾아가며 아이를 키웠다.

너무 힘들어서 아픈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늘 당연히 할머니가 회복하실 거라 믿었다.

하지만 첫째 돌이 지나고 둘째 임신 6개월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린아이를 돌보며 뱃속에 또 다른 아이를 품고 있던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고, 작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할머니의 마지막 1년은 고통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생과 “차라리 빨리 천국에 가시는 게 할머니도, 우리도 덜 힘들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모두가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으니까.


그 뒤로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병을 검색하고, 예방책을 찾으며, 혹시나 그런 병이 닥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안이 몰려오면 숨이 막히고 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위치가 꺼지듯 불안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이걸 깨달았던 경험이 나를 불안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한 첫걸음이었다.


불안은 여전히 반복되었다.

아이들이 방치되는 순간마다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기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다른 것에 몰입하며, 검색을 줄이려 애썼다.

몇 년의 몸부림 끝에 지금은 예전만큼 깊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불안은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불안과 공존하며 산다.

쉽지는 않지만, 불안 덕분에 미리 준비하게 되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을 정리한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내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엔 가족과 식사하고 함께 운동한다.

하루를 마치기 전에는 아이들과 꼭 30분은 대화하거나 게임을 한다.


별것 없어 보이는 하루. 하지만 이 하루가 나를 살린다.

이 평범한 하루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던 삶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아이들과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불안은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그 불안 속에서 만들어낸 작은 계획들이 나를 안정시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