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이별은 아직도 어렵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들

by 자청비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p196의 글은 나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고, 할머니가 떠올랐다.

나를 끔찍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

내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음식으로 나를 치료해 주셨던 분.

할머니의 손맛은 평생 내 입맛을 자극했다.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버럭 하는 순간에 할머니가 생각난다.

“나는 할머니 뒤에 숨기라도 했는데, 할머니가 방패가 되어주셨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방패가 없네.”

그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애 버릇이 나빠지지!”

푸하하. 늘 할머니와 아빠가 나를 두둔해 주셔서 내 버릇이 나빠졌다고, 엄마는 농담반 진담반 섞인 불평을 하셨다.

어릴 적 이야기는 언제 꺼내도 재미있다.


내가 중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인생의 반을 나에게 쏟아주신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때를 떠올리면 딱 한마디가 기억난다.

“네가 다니던 학교 교복 입은 애만 봐도 다 너처럼 보이더라.”

그땐 몰랐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할머니의 사무치는 그리움이었고, 외로움이었음을.


결혼 후 호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이 깊지 않았던 사이였음에도 장례식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첫째 출산 후 불과 50일쯤 되었을 때, 이름만 친구였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병으로.

같은 나이, 다른 삶의 궤적.

나는 축복 속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 친구는 고통 속에 삶을 붙잡고 있었다.

그 불공평함 앞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왜 먼저 다가가지 못했을까, 짧은 안부조차 건네지 못했을까.

그 후로 나는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로 마음먹었다.


첫째 돌이 지나고 두 달쯤 뒤, 둘째 임신 6개월 차.

나는 또 하나의 이별을 맞았다.

첫째를 낳자마자 할머니의 암 판정.

그래도 나는 할머니가 과거에도 암 판정을 받고 몇 번이나 회복하시던 걸 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병을 이기시리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다.

처음에는 원망도 들었다.

첫째 출산하고 엄마가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 왜 할머니는 아프실까.

하지만 할머니는 늘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분이었다.


나에게 이별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어릴 적엔 할머니와 엄마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커 보였다.

그래서 늘 “나는 엄마만큼 클 거야”, “나는 할머니처럼 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그분들은 더 이상 큰 산이 아니었다.

내가 자라나 그만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잘 가지 않는다.

거기에만 할머니가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의 분위기를 감당할 힘도 아직은 없다.

대신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순간, 할머니를 기억하며 울고 웃는다.


할머니의 나이에 내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 야속하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마도 내가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