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김선자], 책을 읽고
서문에 저자가 이렇게 쓴 내용이 있다.
저는 ‘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넓은 중국 땅을 답사하며 여기저기 다닐 때도 웬만해서는 밤차를 타지 않습니다. 창밖에 보이는 것이 어둠뿐,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낮에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눈을 크게 뜨고 길을 바라봅니다. 그 길 위에는 늘 누군가가 있고,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환한 햇살, 내리는 비, 부연 안개, 휘몰아치는 눈보라, 날아갈 듯한 바람을 온전히 느끼며 모든 낯선 것들을 볼 수 있는 그 길은 언제나 저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새로운 길 위로 나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 길 너머에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p6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나는 이 문장이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읽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나도 내가 살아가며 걸어온 길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하고.
아이들이 어릴 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함께 걷던 길이 떠올랐다.
짧은 듯 짧지 않았던 그 길 위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계절마다 길의 얼굴이 달랐다.
애벌레가 지나가던 봄,
민들레 씨앗을 불던 날들,
비가 내리던 길,
매미 소리가 가득하던 여름,
낙엽이 흩날리던 가을,
눈이 소복이 쌓이던 겨울까지.
그 길은 계절만큼이나 이야기로 풍성해졌다.
어차피 신화 속의 숫자 개념은 현실 세계의 숫자 개념과 다르지 않은가. 신화 속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인식 세계에서 벗어나 있듯이 신화 속의 숫자 역시 우리의 상식을 거부한다. p30~31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신화 이야기든 성경 이야기든, 때로는 내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들이 있다.
특히 구약 시대의 성경 이야기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끝없이 펼쳐진다.
처음 ‘알에서 태어난 존재’의 이야기를 읽었을 땐, 우리나라 신화 속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가 떠올랐다.
그리고 반고의 장면을 읽을 때는, 그리스 신화 속 하늘을 떠받친 아틀라스가 겹쳐졌다.
‘거인화생형’ 이름을 붙인 이야기는 디즈니 영화 「모아나」가 떠올랐다.
모아나 1편에서도 마우이와 모아나가 고대 섬의 저주를 풀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나오는데,
마지막엔 모든 것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 모습이 마치 반고가 죽어서 자연이 된 이야기와 닮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성경 이야기와 연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세상의 신화들은 성경 이야기에서 파생된 건 아닐까?”
물론, 참고로 말하자면 성경은 ‘신화’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반호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흔히 떠오르는 ‘미녀와 야수’나 ‘개구리 왕자’가 아니라,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저주에 걸려 허수아비가 된 왕자가 떠올랐다.
허수아비가 된 왕자는 마지막에 소피의 뽀뽀를 받고 왕자로 돌아오게 된다.
비록 허수아비는 동물이 아니지만, 어딘가 그 구조가 닮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 책을 읽어주다 알게 된, 우리나라 민담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어느 날 밖에서 주워온 알을 삶아 먹었는데,
그 뒤로 배가 불러오더니 구렁이를 낳았다.
이웃 대감 댁의 딸 셋이 구경을 왔고, 첫째와 둘째는 징그럽다며 싫어했지만 셋째 딸만은 좋아했다.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자, 구렁이는 쑥쑥 자라 어느 날 대감 집 막내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
막내딸도 흔쾌히 승낙하고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결혼 첫날밤, 구렁이는 간장독, 꿀독, 밀가루독에 차례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멋진 신선비로 변신했다.
그러다 신선비는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나며, 자기 허물을 절대 버리거나 태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언니들이 그 말을 어기고 허물을 불에 태워버린다.
정말로 그 뒤로 신선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색시는 신선비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그를 찾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혼인을 앞두고 있었다.
색시와 새로 맞이할 사람은 겨루기를 하게 되었고,
색시가 이겨 결국 다시 신선비와 함께 살게 된다.]
이야기의 구조도,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요소가 참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시골은 평택이었는데, 서울에서 가려면 몇 시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와 산길을 지나야 했고, 엄마는 항상 그 길을 무서워했다.
시골에 도착하면 꼭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던 작은 아빠가 있었다.
“저 산에는 호랑이가 살고, 우리가 자고 있으면 살금살금 내려온단다.”
“혼자 산속에 있으면 달걀귀신이 찾아오고, 도깨비불이 사람을 홀린단다.”
고요하고 정적이 감도는 시골 밤,
자동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없이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는 그 고요함.
나는 그때의 풍경과 공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던 어린 날의 나.
무서웠지만, 그래서 더 또렷했던 그 밤.
이야기는, 언제나 추억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