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의 팥죽과 신화 속 가뭄, 그리고 나의 여름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p210에 나오는 과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성경 속 바벨탑 사건도 생각났다. 하늘과 닿으려 탑을 쌓았던 인간들의 오만함, 그리고 그 결과가 혼돈으로 끝났던 이야기.
또, ‘공공’의 아들들 중 성질이 고약했던 한 아들이 있었다.
살아서도 못된 짓만 하더니, 동짓날에 죽어 역귀로 변했다는 그 아들. 특히 붉은 팥죽을 싫어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우리 옛이야기에도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가 있다.
동짓날,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먹으려 하자 알밤, 자라, 쇠똥, 송곳, 맷돌, 멍석, 지게가 힘을 모아 호랑이를 물리친다.
하나하나 보면 약하지만, 함께하면 거뜬히 이길 수 있다는 ‘협동’의 의미를 전하는 이야기다.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길어 귀신이 돌아다닌다고 믿었다.
그래서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먹고, 집안 곳곳에 놓아 나쁜 기운을 물리쳤다.
어릴 적, 미신을 잘 믿으셨던 할머니가 팥죽을 해주시던 장면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나는 팥죽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팥 자체가 나와 맞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 들어간 새알심은 유난히 좋아해, 그것만 쏙쏙 골라먹곤 했다.
할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밤에 손톱 깎으면 안 된다.”
“피리 불면 뱀이 나온다.”
“동짓날엔 무조건 팥죽을 먹어야 한다.”
“복날엔 닭을 먹어야 하고, 김치를 먹어야 오장육부가 튼튼해진다.”
나는 순종하긴 했지만, 진짜로 믿지는 않았다.
중국 신화를 읽다 보면, 왜 그곳에서 고장극이나 판타지 로맨스물이 많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풍부한 신화와 전설이 있으니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어릴 적에 중국의 다양한 신화를 알았다면, 나도 소설 한 편쯤은 썼을지 모른다.
내가 중국을 좋아하는 이유도 단순하다. 옛것이 살아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도 아름답지만, 중국의 고유한 전통은 또 다른 자극을 준다.
또한 ‘이무기’ 이야기를 보니 드라마 ‘귀궁’이 떠올랐다.
승천하지 못하고 재앙을 부르는 괴물로 살던 이무기가 무녀 여리와 함께 팔척귀를 물리치며 사랑을 키우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가볍게 보기 좋았던 드라마라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봤다. 특히 육성재 배우의 연기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겨울 한가운데 건조함이 극에 달한 요즘, 마치 여발이 내 얼굴 위를 지나가는 듯하다.
여발은 중국 신화에 잠깐 나오는 가뭄의 여신으로 소개된다.
그래서 평소 잘하지 않던 팩까지 챙기고 있다.
건조함을 막기 위한 나만의 작은 사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