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외로움을 견디게 해 준 것들

혼자였던 시간에 내가 붙잡은 것

by 자청비

뱀띠인 나는 어릴 적엔 뱀띠가 싫었다.

뱀은 징그럽고, 영악하고, 어딘가 숨기고 싶은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귀여운 토끼나 양, 말 같은 띠였다면, 혹은 용맹해 보이는 용이나 호랑이라면 덜 창피하게 느꼈을 것이다.


십이지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보니, 디즈니 플러스에서 마동석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 〈트웰브〉가 생각났다.

이 드라마는 한국의 십이지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악한 세력과 싸우고 인간을 보호하는 ‘12 천사’의 이야기다.

판타지 액션 히어로물에 가까운 분위기다.


평범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신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을까.
인간 세상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줄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열 개의 해는 한꺼번에 하늘로 뛰쳐나갔다. p343~345

신의 아들들도 결국 인간과 다르지 않게 감정을 지닌 존재였던 것일까.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신화란 결국 인간에게서 태어나 인간에게 전해진 이야기이기에,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선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항아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올린 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오버 더 문〉이었다.

신화 속 항아는 남편 ‘예’를 등지고 달로 도망쳐 두꺼비가 되지만,

〈오버 더 문〉 속 항아는 사랑하는 ‘후예’를 살리고 싶어 하는 여신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 페이페이와 항아가 각자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후예의 이야기를 읽으며 또 하나의 작품이 떠올랐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황후화〉다.

후예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딘가 닮은 정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황후화〉를 봤을 때는 어두운 분위기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압도되었다.

화려한 의상과 연출은 인상 깊었지만, 이야기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는 달랐다.

인물들의 감정과 연기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탄탄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쓰다 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와 영화를 꽤 많이 본 사람이라는 것을.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되는 작품은 여전히 잘 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상을 봐왔다.


돌이켜보면 중국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외로움을 DVD로 견뎠다.

조선족이 번역한 어색한 한글 자막이 달린 영화도 있었고,

아예 자막조차 없는 작품도 많았다.


부모님이 해주지 못한 인생의 가이드를

나는 그렇게 영화 속에서 찾았다.

위로를 받았고,

외로움을 견뎠고,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나는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드라마는 피하는 편이다.

대신 판타지 액션처럼 감정 이입이 덜 필요하고,

짧은 시간 안에 결말이 드러나는 영화를 더 자주 찾는다.


어쩌면 나에게 영상은

외로움 속에서 먼저 말을 걸어준 존재였고,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해 준

유일한 인생의 친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