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
우리나라 삼신할머니는 중국의 여와와 닮아 있고,
삼신할머니의 이미지가 잘 담긴 드라마로는 ‘도깨비’와 ‘호텔 델루나’가 떠올랐다.
‘도깨비’는 펑펑 울며 봤고, ‘호텔 델루나’는 재미있게만 봤다.
아직도 사랑 이야기에 눈물이 나는 걸 보면, 내 감수성이 여적 살아있는가 보다.
서왕모 이야기를 읽다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존재”라는 문장을 보니, 영화 ‘천녀유혼’이 생각났다.
천녀유혼 속 나무귀신은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기 위해 처녀귀신을 부리며 남자를 홀리는 것으로 연출된다.
어릴 적,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렇게 빠져 봤는지 모르겠다.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
지금 보면 유치한데 여전히 재미있다. 맞다, 나는 유치한 걸 좋아한다!
불로장생의 복숭아 이야기는 중국 드라마 ‘삼생삼세십리도화’를 떠올리게 했다.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쁜 줄은 그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았다. 예전엔 벚꽃만 제일 예쁜 줄 알았는데.
또 곤륜산에 산다는 서왕모의 이야기를 보니, 왜 중국 무협 판타지 드라마에 곤륜산이 자주 나오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게다가 견우와 직녀 이야기도 중국 신화라니…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두고 왜 우리나라 문화를 자꾸 훔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한복보다 중국 고대 전통 의상이 더 고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우리 문화를 빼앗으려 드는 걸까.
p451~452
해외로 나가기 위해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해쳐 나가야 했던 당시 사람들은 운명을 바다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오는 불안한 심리를 얼러만 져 준 것이 바로 마조라는 바다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나 역시 종교를 가진 이유를 따져보면, 근본적으로 불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누군가를 의지해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연약한 존재들이 모여 서로 기대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것이 요즘 내 마음에 꽂힌 키워드다.
p452~453
특히 마카오라는 지명은 마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마카오澳門의 원래 지명은 ‘호경濠鏡’이었으나 그곳에 커다란 마조 사당이 있어 주민들은 그곳을 ‘마조 여신의 집’이라는 뜻의 ‘마거媽閣’라고 불렀다. 그곳에 처음 드나들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마카오 Macao’라고 부르면서 그곳의 지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카오라는 지명이 결국은 마조 여신의 집이라는 뜻이니, 그곳에서 마조 여신에 대한 숭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마카오라는 이름의 유래가 참 독특하다.
요즘은 너무 추워서 거의 안 나가지만, 가을에는 아이들과 운동하려고 공원에 계속 나갔었다.
오고 가는 발걸음 속에서 이야기 꽃이 피어난다.
하루는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데, 공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계 가동소리에 아이들을 지레 겁을 먹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지켜줄게.”라며 발차기도 하고 주먹질 시늉도 했지만, 아이들의 불안한 시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중국 신화 이야기였다.
문득 떠오른 건 ‘예와 항아’ 이야기.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압축해서 풀어내려니 혀가 꼬이고, 잊은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재미있게 들려주려고 내 입술은 바삐 움직였다. 덕분에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으니 다음에 또 들려달라”는 피드백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요즘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너는 말을 잘한다”는 말이다.
엄청 조리 있게 잘한다는 게 아니라, 듣는 이를 끌어당긴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신없고, 말도 빠르고, 재미없기만 한데… 이해가 안 간다.
예전엔 말이 많은 내가 싫었다. 경청이 안 되는 것도 힘들었고, 실수할까 두려워 말을 아끼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변하지 않는 내 성향은 결국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이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교회 모임에 가면 사람이 많아 내 얘기만 할 수가 없다.
돌아가며 10분씩만 얘기해도 한 시간이 훌쩍 간다. 그러다 보니 지난 몇 년간은 10~15분 안에 내 이야기를 기승전결로 끝내야 했다.
자연스레 빠르고 간결하게 정리하며 말하는 훈련이 된 셈이다.
상황에 따라 나도 모르게 몸이 스스로 반응할 때가 있다.
입을 다물어야 할 땐 다물고, 더 이상 에너지를 쓰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런 행동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곧 아이들 방학이 시작된다.
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집중하려 한다.
우선순위를 세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집안을 돌보는 것.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힘들다.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학이 될지도 모르지만,
작고 작은 사소한 나의 이야기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걸 알기에
이번 방학도 조금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