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훠궈를 먹기 위해서든 마라탕을 먹기 위해서든
탕국에 넣어 먹을 재료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익숙해지면 골라 먹는 즐거움을 알 수 있지만
처음에는 매우 어렵고 꽤 시간이 걸린다. p210 [중화미각]
... 다만 유의할 것은 선택한 육수와 주재료의 맛을 넘어서
맛의 조화를 해치지 않게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훠궈는 이렇듯 육수부터 각종 재료와 소스까지
알면 알수록 골라 먹고 찍어 먹는 즐거움이 있다. p214 [중화미각]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크든 작든,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릴 적엔 아무것도 몰랐기에 어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뒤에야 ‘선택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뒤에는 ‘선택의 책임’이라는 무게가 따라왔다.
그렇게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학창 시절, 중국 유학을 떠났던 그때.
중국 대학 대신 한국 대학을 선택했던 결정.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의 사소한 고민.
아이패드를 살까, 이북리더기를 살까의 실용적인 고민.
게임을 할까, 책을 읽을까 망설였던 나날들.
그리고 불길 속에서 누군가의 문을 두드릴까,
나부터 도망쳐야 할까 망설였던 절박한 순간까지.
우리는 매일 갈림길 앞에 선다.
때론 옳은 선택을 하기도, 때론 실수도 한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나를 조금씩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떠오르는 건 4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무렵,
하교 후 집에 들어선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독점육아에 지쳐 있었던 나는 솔직히 그날은 잠시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씻고 나온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제야 저녁 준비를 멈추고 아이 곁에 앉았다.
딸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날,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에 자기도 모르게 ‘무단횡단 반’을 했단다.
그러니까 무단횡단을 하다 말고, 빨간 불임을 깨닫고 되돌아온 일.
하지만 그 순간, ‘실수했다’는 자책감이 하루 종일 마음을 짓눌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럴 수 있어. 누구나 실수는 해. 엄마는 지금도 실수하면서 살고 있어.
중요한 건, ‘실수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음에 조심하면 되는 거야.”
나는 늘 아이에게는 관대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혹할 만큼 엄격하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쉽게 나를 탓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에게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날의 가지 피자는 탔고, 멸치볶음도 조금 탔지만,
아이는 자기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고,
나는 내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되었다.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익숙한 선택엔 여유가 따르고,
처음 맞는 선택 앞에서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따라온다.
거기에 욕심을 얹으면, 후회가 되는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선택과 실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나는 앞으로도 큰딸이 수많은 선택 앞에 설 때마다
그 옆에서 나무처럼 서 있고 싶다.
햇살이 따가운 날엔 그늘이 되어주고,
비 오는 날엔 조용한 우산이 되어줄 수 있도록.
그리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서서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