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하다, 어우러진다는 뜻의 화(和)
요즘 들어 어른들이 말하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는 말이 실감 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내 삶 속의 ‘화(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관계였다.
늘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모여 있는 톡방에서도 나는 마음 편히 말을 못 건넨다.
답장을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결국엔 아무 말도 못 하고 넘어간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싸움이 될까 봐 먼저 침묵하고,
내 감정이 상해도 드러내지 않는다.
직접 만나도 마찬가지다.
먼저 말을 꺼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후엔 또 후회의 시간이 따라온다.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기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너무 내 방식만 생각했나?’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글로 써놓고 보니, 나도 참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에이, 모르겠다!’ 하며 넘기려 애쓰지만,
사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후회를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 후회는 만남 자체까지 삼켜버리곤 한다.
나는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인가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안간힘을 쓴다.
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줄까?’
그 질문이 늘 마음 한켠에 있다.
나는 남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
하지만 남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한껏 웅크리게 만든다.
결혼 전에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남편을 닮아가서인지, 만남이 부담스럽다.
어떤 사람은 친하지도 않으면서,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접근해 정보를 얻으려 했다.
또 어떤 이는, ‘친하다’는 이유,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이용하려 들었다.
어쩌면,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받은 상처들을 너무 많이 감내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말처럼, 글처럼, 성숙해지기란 참 쉽지 않았다.
며칠 전,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숙해지지 않는 나.
그 내면에는 여전히 ‘아이 같은 면’이 살아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는 어쩌면, 아이처럼 단순하고 어린 구석이 있다.
놀이동산을 함께 즐기고, 레고를 좋아하고, 장난감을 보면 들뜨는 그런 모습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남편과 단둘이 노는 시간이 즐겁다.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놀이동산에 가도 즐겁다.
어디든 놀러 가는 일이라면, 단순히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3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나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
단순하고, 즐겁게.
그 안에서 내 삶의 ‘화(和)’를 이루며,
오늘도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