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나 봐

”꽃 보러 가자 “

by 자청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로 한동안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두 배로 커졌고, 불안은 더 높아졌고,

나는 쉽게 지쳤다.


오빠에게도 계속 툴툴거렸고,

괜히 아이들에게도 마음의 화살이 향했다.

보이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늘 대비하며 사는 것이, 어느새 내 삶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


누구도 내게 가이드를 해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혼자 개척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쌓아두고, 또 쌓아두고,

계속 쌓아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걱정도, 할 일도, 마음도, 불안도.


내 습관과 생각을 바꾸려고 계속 애써왔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고, 또 힘들었다.


안정적인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나는 왜 자꾸 무언가를 찾아 헤맬까.


고심 끝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었구나.

어쩌면 나는 도파민 뒤에 숨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얼마 전 김창옥 교수님의 토크쇼 숏츠를 보게 됐다.

어느 권사님이 기도하다가 전화가 오자 전화를 받고, 다시 끊은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이야기였다.


산책을 할 때는 산책만,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만.

그걸 할 때는 그것만 하라는 말.


그 순간, 흔들리던 내 마음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산책만 하면 되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바쁘기만 했다.

손에는 보지도 않을 핸드폰을 들고

자꾸 시간을 확인했다.

차를 마시겠다고 차를 타놓고도,

차만 멍하니 마시면 될 것을

벌컥벌컥 마셔며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았다.

양치할 때도 양치만 하면 될 것을, 한 손은 양치하면서

나머지 한 손은 다른 걸 했다.


나는 여태껏 한 가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불안해서.

두려워서.


어젯밤에도 괜히 오빠에게 심술이 났다.

이런 내 상태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짜증이 났고, 서운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오빠가 오기까지 기다렸는데,

괜히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잘게, 하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오빠는 자기 할 일을 다 끝내고 방에 들어와

내 옆에 살포시 누웠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우리 이번에는 꼭 꽃 보러 가자.”


이야기해 줬다.

그 말 한마디에,

서운하고 툴툴대고 힘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괜한 화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꽃 보러 가자라는 그 말이

바닥에 있던 나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기분이 조금 나아진 나는

피곤한 오빠 옆에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다가

늦게 잠들었다.


꽃 보러 가자라는 말이 무엇이기에

내 마음을 두드렸을까.


내가 원한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정답도, 조언도, 분석도 아니라

그저 나를 오늘에서 내일로 데려가 줄 다정한 한마디.


나에게 꽃 보러 가자는 말은

단순히 꽃을 보러 가자는 뜻이 아니었다.


괜찮아,

우리 같이 가자.

넌 혼자가 아니야.


어쩌면 나는

그 말속에 들어 있던 다정한 위로를 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