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안아주기 위해
미취학 시절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 속 나는 아주 어렸다.
봉고차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지,
어느 날 우리 집엔 봉고차 한 대가 생겼다.
그 전의 차는 기억나지 않는다.
봉고차만 또렷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 나는 그 차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넓고 편했고,
무엇보다 놀러 갈 때의 설렘이 담겨 있었다.
그날도 우리는 그 차를 타고
시골 할머니 댁에 갔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밭을 팔아
아빠가 시골집 옆에 작은 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오래가지 못했지만.
어른들은 공장 일로 바빴고
동생과 나는 차 안에서 기다리며 놀고 있었다.
해가 어둑어둑 지던 시간,
한 외국인 노동자가 다가왔다.
“어른들이 씻으라고 했어. 내가 씻겨줄게.”
어리둥절한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를 따라갔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그는 우리 몸을 구석구석 씻겨주었다.
나와 동생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기억은
다시 봉고차 안으로 건너뛴다.
곧이어 어른들이 들이닥쳤다.
모든 가족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왜 따라갔냐고, 미쳤냐고,
왜 그런 사람을 따라가냐고
나를 혼냈다.
동생보다 나는 더 크게 혼이 났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이 기억이 잠금해제 되었다.
태어나 처음 수치심을 느꼈던 순간
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어렸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기준조차 애매했다.
어른들은 그 외국인 노동자를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 소개했고
우리는 그를 친절한 어른으로 인식했을 뿐이다.
가르쳐야 했고,
지켜줬어야 할 나이였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대신 수치심이 내 무의식에 새겨졌다.
눈을 감고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그 시간으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기억은 흐려지지만, 무의식 속 감정은 또렷해진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몰랐던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 정도여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다음엔 낯선 사람을 조심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