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 1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낡은 기와집을 개조한 산동네 작은 식당 '남매 분식집'의 점심시간.
하지만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다.
"여기 아직 멀었어?"
"김치볶음밥 하나! 김밥 하나! 라면 하나요!"
여기저기서 주문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분식점 안은 활기가 넘친다.
"아니 점심시간에는 좀 와서 도우라고 했는데.. 선주 얘는 또 어딜 간 거야?"
홀 서빙과 카운터를 오가며 분주한 여사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푸념했다.
"그 뭐야.. 엄청 유명한 아이돌이라며?"
"그러게! 선주가 또 어릴 때부터 예쁘기로 유명했잖아? 허허허허"
식사를 하던 동네 아저씨들이 웃으며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그런 말 말아들! 아이돌이면 진작에 우리 집 형편이 피었지. 연습생이야 연습생!"
"중3 때 길거리 캐스팅인가 뭔가 당하고 나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놈의 아이돌 한다고 쫓아다니고.. 한심해 죽겠다니까!"
"아니 그럼 아이돌이 아닌거여?"
"아이돌은 무슨! 연습생이야 연습생! 맨날 이번에 데뷔하네 어쩌네 하던 게 벌써 몇 년째인지..."
"그래도 그렇게 고생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
"난 진작에 그런 마음 비웠네요! 학원비다 의상비다 뭐다 그렇게 야금야금 가져간 돈이 얼마인데? 지 오빠 고생하는 건 생각도 안 하고 정말.. "
여주인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 드르륵 -
이때 문이 열리며 범상치 않은 외모의 한 소녀가 분식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얀 피부... 작은 얼굴에 짙은 쌍꺼풀의 큰 눈.
적당하게 솟은 오똑한 코...
시원시원한 느낌의 입술에, 조금 성숙한 화장을 했지만 그 마저도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게다가 쭉쭉 뻗어 있는 가늘고 긴 팔다리와 완벽한 신체 비율은, 몸에 딱 맞게 수선해 입은 교복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다.
한눈에도 뭔가 일반 학생들과는 아우라가 다른 모습!
모든 식당 손님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녀에게 향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 그만 좀 해 쪽팔리게! 내가 이번엔 진짜 확실하다고 했잖아!"
"아이고~ 연예인 오셨네!"
"그러게 정말 너무 예쁘게 잘 컸어~"
여사장에게 투덜거리는 딸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듯 보이는 손님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역시~ 날 알아주는 건 우리 꽃집 아저씨랑 철물점 아저씨뿐이라니까!"
"히히.. 그렇지?"
"아저씨들~ 내 하트 받아요~!"
"그래 그래 허허허허!"
입이 귀에 걸리는 두 사람.
"아 맞다! 그건 그렇고 철물점 아저씨! 우리 식당 화장실 좀 빨리 고쳐주세요. 틈만 나면 막혀서 정말 곤란하다니까.."
"알았어! 누구 부탁이라고! 내가 아예 밥 먹고 고쳐주고 갈게!"
"역시 역시~ 아저씨 최고! 오호호호호~"
"허허허허~"
"어이구 어이구... 애나 어른이나... 어쩜 저리도 쿵작이 잘 맞을까?"
옆 테이블을 분주히 치우던 여사장이 한심한 듯 핀잔을 놓았다.
"이것아 빨리 옷 갈아입고 와서 일이나 거들어!"
"아유.. 네~네~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
한편, 주방에서는 여사장의 아들이자, 선주의 오빠인 '환'이 홀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초롱초롱한 눈, 서글서글한 인상의 무척 잘 생긴 얼굴...
하얀색 조리복을 입고 조리모까지 정갈히 갖춰 쓴 채,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이 마치 호텔의 일류 요리사와도 같아 보인다.
"오케이! 잔치국수 하나! 제육덮밥 하나! 나왔어요~!"
그러자, 방에서 옷을 막 갈아입고 나오던 선주가 이를 듣고 오빠에게 짜증을 냈다.
"오빠! 누가 듣는다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
"이 작은 분식집에서 굳이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음식 나온 것쯤이야 알 수 있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니까!"
그러나, 환은 그런 선주의 짜증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허! 모르는 소리! 이래야 기합이 들어간다니까!"
"그리고.. 이렇게 해야 손님들도 '아~ 내가 기다려왔던 음식이 드디어 나왔구나...'하고 알 수 있으실 거고!"
결국 그런 세상 해맑은 오빠의 유쾌함에 두 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여동생.
"아유 아유.. 말을 말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자자~ 여기 잔치국수 하나, 제육덮밥 하나 시키신 분!"
"아하하하하~"
유쾌한 두 남매의 티키타카에 식당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러자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 앞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마시며 남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손님 중 한 명이 여주인에게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건넨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이 집 아드님은 왜 항상 요리가 나올 때 저렇게 크게 소리치는 거래요?"
"맞아 맞아... 나도 궁금했어! 뭐... 활기차고 좋기는 한데... 왜 굳이 그럴까?"
옆에 있던 다른 손님도 궁금했다는 듯 말을 거들었다.
"아... 그거요? 그게... 에휴..."
갑자기 한숨을 쉬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여사장...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일행 중 한 명이 다른 두 사람의 팔을 잡고 억지로 식당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아니 이 사람들이 그런 게 뭐가 궁금해! 난 활기차고 좋구먼! 자자~ 밥 다 먹었으면 이제 일들 하러 가자고!"
"사장님, 잘~ 먹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세 사람...
끌려 나온 일행 중 하나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짜증을 냈다.
"아니, 왜 이리 서둘러? 무슨 일인데?"
"사람들이 이리 눈치가 없어서야! 이 집 아들이 원래 좋은 대학교 나와서 호텔에서 일했다는 것 몰랐어?"
"몰랐지? 그런데 그게 뭐?"
"그러게? 나도 전혀 몰랐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런 분식집에서 일을 하고 있대? 호텔에 다니는 편이 자기를 위해서나 집을 위해서나 훨씬 좋을 텐데...?"
"원래 이 집 요리를 카운터에 있는 여사장님이 했었는데... 몇 달 전에 폐암으로 수술을 했잖아...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는데, 아무래도 주방에서 계속 요리를 하긴 힘든가 보더라고..."
"아니, 그럼 식당 문 닫고, 아들이 벌어다 주는 돈 받으며 편하게 생활하면 되잖아?"
"그렇지! 무리할 필요 없이 말이야? 아들이 저리 장성했는데..."
"그게 또 사정이 있나 봐... 이 식당이... 이게 이래 봬도 이 집 남자 사장님이 살아 계실 때, 진짜 뼈 빠지게 일해서 겨우겨우 장만한 식당이라잖아..."
"그런데?"
"그게... 은행 대출이 많았나 보더라고... 그런데 이런 가난한 동네에서 말이야... 분식집 하면서 애들 둘 키우고 교육시키기가 어디 쉬운가? 무리를 하다가 남자 사장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그걸 여사장님이 이어받아 밤낮으로 열심히 해서 애들도 저리 키우고 어찌어찌 대출도 다 갚았는데..."
"아이고 저런! 암에 걸린 거구나?"
"그래! 그런 스토리야!"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정은 대충 알겠는데... 빚도 다 갚았다며? 그럼 아들이 굳이 호텔을 때려치우고 나와서 분식집을 이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러게? 왜 그랬대?"
"이 집을 포기할 수 없는 거지! 그만큼 이 가족들에게 특별하다는 뜻 아니겠어? 그러니까... 좋은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호텔에서 경험도 쌓았으니... 그걸 바탕으로 분식집을 잘 키워서 '라면천국 불면지옥' 같은 체인점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아들이 엄마를 설득했다네..."
"그래서 잘 다니던 호텔을 나온 거구나?"
"아... 그런 사연이... 안타깝네... 안타까워..."
"그러게... 얼마나 미련이 남았으면, 호텔 주방에서 하던 습관을 못 버리고 여태 저렇게 크게 말하겠어?"
"음..."
"그런 거지! 어쨌거나 엄마는 아들 앞길 막은 것 같아서, 그게 가슴 아픈 거고..."
"그런 사정이 있었구먼... 허허..."
"아니! 이 사람아! 이 집 여사장님을 연모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몰랐어?"
- 부아앙~ 부웅 -
이때, 갑자기 사람들의 대화를 깨며 노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요란하게 다가와 식당 앞에 정차했다.
- 끼이익 탁! -
차 문을 열며 등장한 건 고급 양복에 노란 선글라스를 낀... 부티가 철철 넘쳐흐르는 남자!
"이 녀석 김환! 내가 그렇게 기회를 줬는데도 말이야... 답도 없고 심지어 전화기 까지 꺼 놓았다 이거지?"
"이 몸으로 하여금 여길 또 오게 만들다니!"
'남매 분식집'의 간판을 바라보며 다짜고짜 툴툴거리는 그는 누구일까?
이런 스토리에 꼭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역? 혹은 라이벌? 과연 그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