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 1
9화. 스쳐지나가다
주막을 나와 왼쪽으로 5분쯤 걸어가니 과연 연아가 말한 대로 우물이 있었다.
"오! 정말 우물이 있구나?"
우물가에는 동네 사람들인 듯 보이는 여자 넷이 모여 앉아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물로 다가오는 환을 발견하자,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그녀들!
"아니... 아니... 저게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그러게? 게다가 저게 무슨 옷 이래? 저런 옷은 난생처음 보지 않아?"
"잉! 그려! 희한혀! 옷고름도 없는 것이... 색깔은 또 저게 뭐여? 저고리는 흰색 인디... 바지는 검은색?"
그녀들은 환이 듣지 못하게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걸어오는 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환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분명 동네 아주머니들인 것 같은데... 분명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아... 아주머니들이랑 수다 떠는 건 싫지 않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답 못할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어쩌지?'
'괜히 수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면 안 되는데...'
환이 우물가에 다가갈수록 더욱더 날카로워지는 그녀들의 눈빛!
결국 환도 고민하기를 포기한다.
'에라 모르겠다! 뭐 큰일이야 있겠어? 우선 부딪혀보자! 스마일 모드 작동!'
- 꾸벅 -
"아이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예...? 예..."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여전히 환을 경계하는 표정들.
"아니... 못 보던 얼굴인데? 대체 누구요?"
그중 가장 연장자인듯한 여자가 환에게 물었다.
"네! 저는 그러니까... 저 아래 주막집에서 오늘부터 새로 일하게 된 환... 김환이라고 합니다."
"저 아래 주막집? 박주모네?"
"아! 네! 박주모를 아세요?"
"잘 알지! 그 집 부녀가 얼마나 유명한데!"
익숙한 사람과 장소의 이름이 나와서인지... 이내 주변의 여자들도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럼! 우리 박주모가 얼마나 참하고, 야무지고... 또 심성은 얼마나 착한데?"
"그 아버지는 또 얼마나 멋있다고!"
"아따 이 사람... 여서 사심을 드러내는 거여?"
- 오호호호호 -
"하하... 그... 그렇죠! 박포수님이 좀 멋있으시더라고요... "
어느새 그녀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환.
"그나저나.. 그 집에 남자 일꾼을 들이다니... 참 별일이네?"
"그러게 말이야? 박포수가 딸을 어찌나 애지중지 여기는지... 웬만한 남정네들은 근처에도 못 가게 했을 텐데?"
"그러니까... 그 일 있고 나서 더 심해졌지 아마?"
".........................................."
순간, 일행 중 한 여자가 던진 한마디에 갑자기 무거워지는 분위기!
환 또한 이를 감지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져 슬쩍 떠보기로 했다.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러니까 그게..."
그러자 옆에 있는 일행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다.
"아유! 무신 일은 무신 일! 아무 일도 없지! 아니 개성댁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무신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혀 싸?"
"그러게? 아이고! 요놈의 요 입이 방정이지!"
'음...'
'뭔가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연이 있는 것 같군...'
분위기를 읽은 환도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애들 밥 차려 주러 가야지!"
"나도 그만 놀고 들어가 봐야겠구먼!"
뭔가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인지, 우물가의 여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무튼, 거 자주 볼 것 같으니께~ 앞으로 잘 부탁혀요!"
"네네! 감사합니다."
환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주막으로 발길을 돌렸다.
**********
그렇게 주막과 우물 사이를 몇 번을 왕복했을까?
환은 여전히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다.
"아이고 힘들어... 이것만 가지고 가면 이제 끝이다! 끝!"
"팔자에도 없는 물지게라니... 에구구..."
- 탁 -
"어... 어어어..."
불평을 늘어놓으며 걷다가 바닥의 돌부리에 걸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환.
- 주룩 주르륵 -
그때였다.
누군가 뛰어들어 환의 몸을 잡아 환이 다시 균형을 잡게 도와주었다.
"허허... 조심하시게! 하마터면 애써 길어온 물을 다 엎을 뻔하지 않았는가?"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다 오며 가며 그렇게 돕고 사는 거지! 하하하"
'뭔가 기품 있는 목소리다...'
환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 살짝 찢어진 큰 눈, 오뚝한 콧날에 얇은 입술을 한 생김새가 흡사 영화배우처럼 예쁘게 생긴 남자였다.
옷차림 또한 예사롭지 않았는데... 비록 환이 조선시대의 복장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값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화사한 분홍색 두루마기, 은은한 노란색이 감도는 저고리, 멋들어지게 쓴 갓에는 옥석으로 만든 갓끈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허리춤에는 나무로 만든 부채를 차고 있는 모습.
"뭘 그리 빤~히 쳐다보시오?"
"아... 아닙니다!"
이때 옆에 있던 일행이 안절부절못하며 남자를 다그쳤다.
"나으리! 이런 곳에서 지체하지 마시고,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이러다가 큰일 납니다!"
"허허! 이 녀석이! 거 호들갑 좀 떨지 마라! 뭐... 조금 늦는다고 해서 큰일이야 있겠느냐?"
"아이고 나으리! 그러지 마시고 저 좀 살려주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이놈아!"
"그럼, 도령! 앞으론 물 흘리지 말고 잘 가시오! 하하하!"
남자는 호쾌하고 웃으며 일행을 따라나섰다.
"뭔가 기분 좋으면서도 신기한 사람이다. 양반, 귀족... 뭐 그런 건가?"
환은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다시 주막으로 향했다.
"빨리 가서 물독에 부어놓고, 박주모한테 밥 좀 차려달라고 해야겠다. 어우 배고파!"
**********
한편 환을 떠나온 남자의 일행은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나저나 구길아! 방금 그 도령... 뭔가 신기한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었느냐?'
"글쎄요! 요즘이야 뭐 청국이나 왜국이랑도 무역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까... 그래도... 내 저런 옷은 처음 보는데... 뭔가 재질도 좀 다른 것 같고..."
"아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지 마시고 어서 서둘러 주세요 대군마마! 이러다 또 저번처럼 주상전하께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대낮에 가는 것 아니겠느냐? 하하하!"
"아니.. 해도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무슨 기방을 낮부터 가신다고..."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어련하시겠습니까?"
"주변을 둘러보거라! 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이더냐! 이들이 이리 평안한 것은 모두가 다 아버님께서 불철주야 백성들의 삶을 위해 애쓰시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예! 그렇죠!"
"게다가, 아버님의 곁에서는 든든한 형님께서 아버님을 열심히 보좌하고 계시니..."
"내 그런 두 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리 백성들의 삶을 살피러 온 것 아니겠느냐?"
"아이고..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구길아! 오늘따라 연화각이 참으로 멀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인 거냐?"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제 금방입니다."
"내 빨리 그 아이를 만나보고 싶구나! 누구도 본 적 없는 신기한 춤을 춘다는 그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