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어린 주모

조선 분식집 1

by 칭푸르

8화. 어린 주모

"어서 일어나시오! 벌써 해가 중천에 떴소!"


"으... 으음..."


연아가 깨우는 소리에 환은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여기가 어디지...?'

'아.. 맞다! 주막...'


환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었다.

마당의 평상에서는 일찌감치 일어난 듯한 연아의 아버지가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 일어났구먼! 어서 이리 와서 한술 뜨게!"


"네.. 어르신!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르신은 무슨... 그냥 박포수라고 부르게!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박씨였구나...'


"네... 박포수님!"


환이 자리에 앉자 연아가 식탁으로 국과 밥을 가지고 왔다.

여전히 환을 대하는 태도에는 괜한 날이 서있다.


"자! 얼른 드시오!"


커다란 고봉밥에 산나물 무침, 된장국이 있는 소박한 상차림.


"이야... 이것참 밥이 산처럼 많네요... 하하..."


아무래도 첫 식사이다 보니, 서로 어색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바꾸고자 환이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고맙게도 이를 받아주는 박포수!


"이 사람이... 이게 뭐가 많다고 그래? 이 정도면 일반적인데?"


그러고 보니 연아의 밥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고봉밥이었다.


'두 사람 다 무척 식성이 좋으신가 보다...'


"어서 드시게! 잘 먹어야 힘을 쓰지!"


"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환이 앉아서 식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막 식사를 마친 박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을 들고나갈 차비를 하는 박포수.


"아니... 이 아침에 어디를 가시나요?"


"옆동네 산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민가를 덮쳤다고 해서 말이야... 그놈을 잡으러 가야 하네!"


'호랑이가 있어?'


"그러고 보니, 도령도 산에서 잤다고 들었는데... 용케도 무사했구먼?"


"듣고 보니 그렇군요... 호랑이..."


순간 자신이 얼마나 위험에 무방비하게 방치되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환이었다.


'내가 운이 참 좋았었구나... 호랑이라니...'


"그나저나 박포수님! 저는 환입니다. 김환! 그냥 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김환이라... 그럼 환도령이군"


'또 도령이 나왔다... 하하...'


"네!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환도령! 아무튼 난 지금 나가봐야 하니까... 우선 밥 먹고... 할 일은 연아가 이야기해줄 테니, 연아가 시키는 대로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연아야! 아비 나갔다 오마!"


"조심히 잘 다녀와요!"


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박포수.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박포수가 집을 나가자, 환과 연아 단 둘만 밥상 앞에 남게 되었다.


- 딸그락 딸그락 -


- 탁! 우물우물... 쩝쩝 -


갑자기 정적이 흐르면서... 말수가 없어진 두 사람.

들리는 건 오직 밥을 푸면서 숟가락이 밥공기를 때리는 소리, 상에 젓가락 놓는 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뿐...

젊은 남녀가 둘만 있게 되니 매우 뻘쭘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었다.


"저기... 박포수님... 이니까... 그쪽 이름은 박연아?"


먼저 정적을 깬 것은 환이었다.


"박연아 맞소! 환. 도. 령!"


'또 도령이라고...'


"저기 연아씨! 부탁인데 그 도령이라는 말 좀 안 하면 안 될까요?"


"아니! 도령을 보고 도령이라 부르는데 그게 뭐가 이상하오? 도령이 아니면 대체 뭐라고 부르란 말이오?"

"딱 보니 나이도 내가 많은 것 같은데... 그... 좋은 말 많잖아요? 뭐... 오빠... 라던가...? 아... 조선이니까... 오라버니... 려나? 그래! 오라버니 좋네! 오라버니... 하하..."


순간 심하게 일그러지는 연아의 미간!


'아... 농담으로 던진 건데... 괜히 했나? 분위기만 더 이상해졌네...'


그런데, 연아가 의외로 이를 받아주었다.


"오라버니?"


"아..."


환은 본인이 요구해놓고, 들려오는 연아의 '오라버니' 소리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 그... 그래 그래! 좋다 좋아! 아하하하.. 하하..."


이게 뭐라고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 환.


"오라버니! 얼마나 좋아! 오라버니! 친근하고... 편하고... 오라버니..."


하지만 역시 호락호락한 연아가 아니었다.


"...는 개뿔! 언제 봤다고 오라버니야? 어림도 없소! 그나마 환도령이라고 불러주는 것만도 감사하시오!"


'그럼 그렇지... 혹시나 했다 내가...'


"거 성격 참 까칠해서... 그게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아유 알았어요. 알았어!"


가볍게 넘기는 듯했지만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환.


"그나저나... 난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그러자 마침 식사를 마친 연아가 물그릇의 물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 앞으로 걸어가 환을 돌아보는 연아.


"뭐하시오? 어서 안 오고?"


"나... 나요?"


"그럼 여기 그쪽 말고 누가 또 있단 말이오? 밥도 다 먹지 않았소? 어서 오시오!"


"네네~ 갑니다 가요!"


연아는 환을 데리고 주막의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적당한 크기로 잘린 커다란 나무장작이 쌓여 있었다.


"우선, 여기 있는 장작을 좀 패시오! 잘 알겠지만 우리 집은 주막이라서 불을 많이 쓰니까... 장작도 많이 필요하오!"


"얼마나요?"


"모자라지 않게 적당히 알아서 하시오! 남으면 또 쓰면 되니까.. 그런 것까지 다 알려줘야 하오?"


'아... 거 성격 참...'


"네네~ 알겠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래도 얼굴은 그럭저럭 귀엽게 생긴 것 같은데... 성격이 저래서야...'


그랬다.

연아는 갸름한 얼굴에, 진한 쌍꺼풀의 동그란 눈... 끝이 둥근 방울코와, 야무지게 다문 작은 입을 가진 꽤나 귀여운 모습의 소녀였다.


'나이는... 우리 선주 비슷하거나... 한두 살 위일까?'


- 빤히 -


"아니! 패라는 장작은 패지도 않고 왜 남의 얼굴을 그리 빤히 쳐다보고 그러시오?"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환이 불편했는지 연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뭐... 언제 연아씨를 봤다고?"


연아의 말에 멋쩍어진 환은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응수했다.


"역시! 신은 공평해!"


"지금 뭐라고 했소?"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장작 패야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그쪽도 가서 할 일 하세요!"


- 휙 -


환의 말에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부엌으로 사라지는 연아.


'아유... 저렇게 사나운 여자를 누가 데리고 갈까?'


환은 그런 연아의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

환이 장작을 패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일정하게 들려오던 '쿵쿵' 하는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더니, 이내 환이 연아를 불렀다.


"이봐요! 이리 좀 와봐요!"


'뭐야? 벌써 끝난 거야?'


환의 부름에, 연아는 마늘을 까던 손을 멈추고 주막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비 오듯 땀을 쏟아내며 고통스러워하는 환과, 잘게 쪼개진 장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악하악.. 쿨럭쿨럭... 아이고 죽겠다... 으헥! 쿨럭..."


"풋..."


필요한 양을 훨씬 웃도는 장작더미와, 그 옆에서 괴로워하는 환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연아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니... 이봐요! 이게 웃겨요? 남은 힘들어 죽겠구먼..."


"내...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시오?"


"지금 분명히 풋... 하고 웃었으면서?"


"그러게... 미련하게 무슨 장작을 이리도 많이 패셨소?"


"많이 필.요.하.다.면.서.요?"


"이리 많이 패라고는 말한 적 없는데..."


"와... 이런 악덕 고용주 보소! 그래! 다 미련한 내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어!"


"음음... 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장작 다 팼으면, 이번엔 저기 물지게 지고 우물에 가서 물을 퍼가지고 오시오!"


연아의 말에 크게 놀라는 환!


"우물? 지금 우물이라고 했어요? 여기 우물이 있어요?"


"뭘 그리 놀라시오? 사람 사는 동네에 우물이 있는 건 당연하지!"

"그나마 이 동네 우물은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이란 말이오!"

"게다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우리에겐 정말 고마운 우물이라고 할 수 있소!"


'고마운 우물이라...'


"그렇겠지... 조선시대에 설마 수돗물이 있겠어? 나도 참 괜한 기대를..."


환은 체념한 듯 생소하기 그지없는 물지게와 씨름하며 연아에게 물었다.


"그래! 그 고마운 우물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데요?"


"주막을 나가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우물이 나올 것이오! 우리는 물도 많이 쓰니까... 저 앞 물항아리 모두에 가득 채워야 하오!"


"하... "


"서두르시오! 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들이닥칠 테니!"


"네네..."

"물지게에 우물이라... 하하..."


그러자 투덜거리는 환에게 연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아니! 그게 뭐가 힘들다고 그리 투덜대시오? 나도 매일 하는 일인데..."


"네? 진짜? 연아씨가 이걸?"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 연아씨라 부르는 것 좀 그만두시오! 낯간지러워서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소!"


"아니 연아씨를 연아씨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박주모!"


"네?"


"다들 날 그리 부르오! 박주모라고..."

"그러니 그쪽도 그냥 날 박주모라고 부르시오!"


"연아란 예쁜 이름을 두고 왜?"


"그냥 박주모가 편하오! 박주모!"


"뭐 정 원하신다면 그리 불러드릴게요 박주모님!"


"님은 빼고!"


"알았어요! 박. 주. 모! 그럼 나 물 뜨러 가요!"


"물 안 쏟아지게 조심히 잘 다녀오시오!"


순간 연아의 얼굴에 그늘이 깃든 것 같은 위화감을 느낀 환이었으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환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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