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 1
돌아본 곳에는 왼쪽 어깨에 장총을 둘러멘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뉘시길래 남의 집 앞에서 그리 구슬프게 울고 있소?"
"나.. 남의 집이라니요?"
"거기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시오!"
환은 남자의 말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돌담이 있는 제법 큰 초가지붕의 집이 있었다.
"뭐가 보이시오?"
"집.. 인데요?"
"그렇지! 집! 그럼 그 집 앞에 걸려 있는 주(酒) 자가 써진 주등(酒燈)이 보이시오?"
'주... 아... 술주...'
"네... 보입니다...?"
"그러니까... 주등이 걸려있다는 건 이 집은 주막이라는 뜻이고!"
"내가 그쪽 도령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주막의 주인이기 때문이고!"
실제로 집 앞마당에서는 사람 몇몇이 평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 주막..."
"그러니까.. 사람이 뭘 먹을 때 누가 우는 모습을 보면.. 밥맛이 있겠소? 없겠소?"
"어.. 없죠..."
"그럼! 내 말도 잘 알아들은 것 같고! 이제 울음도 그친 것 같으니, 내 집 앞에서 떨어져 가던 길 가시오!"
"네... 죄송합니다.'
말을 끝마친 남자는 바로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왔어요?"
남자가 주막 안에 들어가자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목소리는?'
환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발걸음을 돌려 주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이봐요!"
"앗! 도령은?"
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친 사람은 다름 아닌 낮에 산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막 안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아니..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총을 들고 들어간 남자가 여인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은 무슨!"
"아니... 아는 사람도 아닌데 왜 아는 척을 해?"
남자는 환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에 여인은 환에게 쏘아대며 말했다.
"아니! 산에서 도와줬으면 됐지! 왜 집까지 따라와요?"
"아... 그게 아니고... 사실은..."
"그게 무슨 소리야?"
여인의 말을 들은 남자가 환의 말을 끊고 화를 냈다.
"집까지 따라오다니?"
"이 도령이 산에서부터 널 따라왔다고?"
- 끄덕끄덕 -
"그러니까.. 이 파렴치한 도령이 산에서 연아 너를 보고 반해 수작을 부리다가... 이렇게 집까지 따라왔다 이거지?"
- 끄덕끄덕 -
아버지의 말에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연아.
"우리 딸이 아무리 지 엄마를 닮아서 한 미모 한다지만.. 그렇다고 백주 대낮부터 막 따라다니고, 집까지 찾아오고 그러면 안 되지!"
'아니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환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요..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님!"
"뭐! 아. 버. 님?"
"내가 왜 그쪽 아버님인데?"
"아... 그러니까... 연아...씨 아버님!"
"연. 아. 씨?"
더욱더 화를 내는 남자.
"충분히 오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말도 좀 들어주세요!"
"오해? 그럼 이 상황은 뭔데? 원래 아는 사이도 아니라면서? 그런데 그쪽이 지금 우리 집에 있잖아?"
"그건, 연아씨 아버님이 먼저 말을 걸어서..."
"내 탓이라는 거야 지금?"
"아니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선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그래그래! 거... 그 도령 이야기도 좀 들어봅시다!"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주막 안 손님들이 말을 거들었다.
"으흠.. 그럼! 어디 이야기해보시게! 만약, 내가 듣고 납득이 안 갔을 때는...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손님들의 말에 다시 냉정을 찾은 듯한 남자가 환에게 말했다.
"네.. 그럼..."
환은 산에서 길을 헤매게 된 일과 연아를 만나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연아 씨를 알고 있는 거고요..."
"음... 뭐 그건 잘 알겠소... 그럼 어째서 우리 집 앞에서 울고 있었던 거지?"
"아니! 우리 집 앞에서 울어요?"
아버지의 말에 연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 그렇다니까! 집 앞 길에서 고개를 숙이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뚜욱뚜욱 흘려가며 꺼억꺼억 하고 소리 내 우는데... 어찌나 청승맞아 보이던지!"
"아니.. 왜 남의 집 앞에서 울고 그래? 재수 없게!"
'재.. 재수...'
환은 너무 창피하고 억울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떻게든 잘 넘어가야 했다.
"그건... 사실..."
"제가 한양에 온 이유는 돈 벌겠다고 집 나간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인데... 아니 실제로 보니까... 이 한양이라는 곳이 크기도 크고 사람들도 정말 많은 것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 어린것이 이 무시무시한 한양에서 어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서... 아흑..."
매우 진짜 같은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환.
환의 그럴싸한 거짓말에 넘어갔는지 사람들이 환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런... 딱한 사정이 있었구먼..."
"그런 일이면 당연히 눈물이 나지! 암! 나라도 크게 목놓아 울었겠네!"
"그런... 일이라면야 뭐..."
여론의 힘에 결국 환의 이야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부녀였다.
'좋았어! 분위기 좋아! 여기서 더 밀어붙이자!'
환은 내친김에 사람들의 동정심을 더욱 자극해 상황을 자신에게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제가 돈을 아끼겠다고 노숙을 하다가, 짐을 모두 도둑맞고, 지금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래서...요?"
환의 말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부녀.
"보아하니, 제법 규모가 큰 주막인 것 같은데..."
"여기서 일하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하... 이런 뻔뻔한 사람 같으니라고!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환의 부탁에 황당하다는 듯 연아가 말했다.
"그래! 사정도 딱한데 저 사람 그냥 쓰지 그래?"
"안 그래도, 일꾼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환의 딱한 사정에 진작 환의 편이 되어버린 손님들이 환을 지원 사격해주었다.
"아... 난감한데..."
깊이 고민하는 연아의 아버지.
하지만 연아는 영 환이 못마땅한지 기를 쓰고 반대했다.
"난 반대야 아버지!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저런 사람을 어떻게 써?"
"아니야! 이건 좀 생각을 해볼 문제야. 안 그래도, 나 사냥 나가면 항상 주막에 너 혼자 둬야 하는 게 불안했는데..."
"난 괜찮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그런 연아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고민을 계속했다.
잠시 후 결론을 내렸는지, 아버지는 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음... 그럼 이렇게 하시게. 사정을 들으니 갈 데도 없는 듯하고... 한양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연아라고 하니, 이 또한 어떤 인연인 것 같기도 하고..."
"여동생을 찾을 때까지 우리 주막에서 일하시게! 대신 돈은 많이 못주네!"
"아버지!"
연아는 이 상황이 못마땅했는지 이내 화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감사합니다! 아버.. 아니 연아씨 아버님! 저는 그저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정말인가? 먹여주고 재워만 줘도 돼?"
"됩니다... 만! 혹 여유가 있으시다면야.. 뭐 간단히 쓸 돈 정도 챙겨주시면 좋고..."
"흠흠! 그건 그쪽 하는 것 봐서 결정하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주막 손님들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거 참 재미있는 도령이구만!"
"이리 와 앉게! 내 축하주 한잔 주겠네"
"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배가 고팠던 환은 손님들의 권유에 바로 술자리에 합석하여 술과 안주를 먹었다.
'조선은 참으로 따뜻한 곳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