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조선의 대군과 아이돌 연습생

조선분식집 1

by 칭푸르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아이고! 선비님 오셨습니까! 어서 이리 드시지요!"


마침내 연화각에 도착한 장성대군의 일행을 연화각의 행랑아범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하하! 그래, 그간 잘 지냈나?"


일행이 행랑아범을 따라 연화각에 들어서자, 행수기생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나으리 오셨습니까?"


"오! 그래그래! 어째 자네 예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네! 무슨 좋은 일 있는가?"


"과찬이십니다. 나으리!"


"아니 아니... 정말이네! 어째 그 자네의 피부가... 뭐랄까? 반짝반짝하니 빛이 나는 것 같네만?"


"아이 참! 그리 보이십니까? 요즘 얼굴에 좀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긴 합니다만... 나으리께서 이리 알아봐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이리 드시지요!"


행수기생의 안내로 기방 안으로 들어가는 일행.

대낮이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시끄러운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하하... 이 나라에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았구나! 역시 술은 낮술이지!"


장성대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즐겁게 행수기생을 따라 들어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들려오는 큰 소리!


"지금 뭐라고 했어?"


장성대군의 일행은 유난히 소란스러운 방 앞을 지나다 발길을 멈췄다.

안에서는 한 남자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뭐야! 이 내가 주는 술을 안 마시겠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이 년이 어디서 건방지게! 내가 누군지 알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약속을 어기셨으니,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거기 안서?"


- 드르륵 -


화가 잔뜩 난 남자의 말을 무시한 채, 문을 열고 나오는 여인.

그녀는 하얀 피부, 작은 얼굴에 짙은 쌍꺼풀의 큰 눈을 지닌...


'선주'였다.


장성대군과 눈을 마주치자,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는 선주.


"이년아! 거기 서라고 했지?"


술에 취한 남자가 선주의 뒤를 따라 나오자, 장성대군은 발을 걸어 그를 넘어뜨렸다.


- 우당탕 -


"아악!"


"어이구 저런 저런... 거 조심하셔야지! 술이 많이 취하셨소!"


남자가 넘어지는 소리에 선주도 잠시 멈춰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 선주에게 미소를 지어 보여주는 장성대군.

이에 선주도 다시 한번 가벼운 목례로 장성대군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뒤를 돌아 사라졌다.

바닥에 넘어져 괴로워하는 남자 너머로 선주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는 장성대군.


"참으로 신비로운 여인이다..."


"네? 어디가요?"


"네 녀석이 어찌 알겠느냐!"


장성대군의 일행은 다시 행수기생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안 그래도 술에 취하면 자주 난동을 부리는 분 이기에 저희도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아닐세! 아무리 술이 좋아도, 술에 삼켜지면 아니 되지! 암~!"

"어쨌거나 여기 한상 거하게 좀 차려 오시고... 내 긴히 부탁이 있는데 말이지..."


그러자, 장성대군의 말에 웃음을 보이며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하는 행수기생.


"호호호... 무슨 부탁을 하실지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래? 하하하! 그럼 어디 자네가 말해보게!"


"그 아이를 찾아오신 것 아니옵니까? 신기한 춤을 추는 소문의 그 아이를요...?"


그러자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장성대군.


"하하하! 이리 눈치가 빠르니! 내 역시 자네에겐 못 당하겠네 그려!"


"과찬이십니다. 나으리"


"맞네! 자네의 말대로 요즘 한양 전체에 소문이 자자한 그 아이가 궁금해서 온 것이 맞네..."


"그럼 분부대로 그 아이를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맞네만...!"


장성대군의 말에 문을 열고 나가려던 행수기생이 멈춰 섰다.


"네? 혹시 다른 분부가 있으신지요?"


"내 마음이 바뀌었네!"

"춤을 추는 그 아이는 다음에 보도록 하고... 방금 보았던 그 아이를 불러다 주게!"


"방금 보았던 아이라 하시면...?"


"방금 방에서 수난을 당한 그 아이 있지 않나?"


"아..."

- 훗 -


그러자 장성대군의 말을 듣고 행수기생은 재미있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뭐 딱히 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네!"

"그저... 내 방금 그 아이를 구해주기도 했고... 또 어떤 사연이길래 그런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나으리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 드르륵 -


- 탁 -


방문이 닫히자 구길이 장성대군에게 물었다.


"아니 저하! 원래 목적은요? 그 춤추는 아이를 보려고 굳이 이런 대낮부터 기방에 오신 것 아니셨습니까?"

"왜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허허 이 녀석이! 내 방금 행수기생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 아이를 구해주기도 했고... 또 어떤 사연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변명하듯 말꼬리를 흐리는 장성대군.

이 모습을 보고 구길이 히죽 거리며 웃었다.


"아이고... 그 아이한테 반하셨네! 반하셨어!"


"어험험!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녀석아!"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변명을 하시려면 그 표정이나 좀 관리하면서 하시던가요!"


"거 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아니라면 아닌 거지! 어험... 흠흠..."


- 드르륵 -


"술상 들여가겠습니다."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술상이 차려지고.

이내 선주가 따라 들어왔다.

선주의 얼굴을 보자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장성대군.


"어험! 흠흠..."


"저거 봐 저거 봐! 딱 봐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구먼!"


연신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워하는 장성대군을 한심한 듯 바라보는 구길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미(善美)...라고 합니다."


'선미? 예쁜 이름이다!'


"조금 전에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비라면 누구나 다 그리 행동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네가 놀랐겠구나! 그래... 괜찮은 것이더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선비님 덕분에 저는 멀쩡합니다."


"그래... 그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리 험한 일을 당한 것이더냐?"


그러자 선미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젠 뭐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네... 원래 저는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술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가 술이 몸에 맞지도 않아서, 처음부터 연화각에 들어올 때 그런 조건으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아니, 술을 파는 기방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럼 넌 기생이 아닌 것이냐?"


선주의 대답에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 장성대군이었다.


"네! 저는 기생이 아닙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선주.


"그래? 그럼 넌 어찌하여 연화각에 있는 것이냐?"


"저는 원래 사당패와 함께 떠돌아다니다가 이 한양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연화각에서 공연을 보여드리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저를 예쁘게 봐주셔서, 그때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너는 원래 사당패인 것이냐?"


"아닙니다. 그들도 우연히 알게 된 사이로, 오갈 데 없는 저의 사정을 듣고 제게 도움을 준 것입니다."


'오갈 데가 없었다...?'


선주의 말을 들을수록 의문이 커져가는 장성대군이었다.


"내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너의 얼굴이나, 너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오갈 데 없이 막 자란 그런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내 말이 틀리느냐?"


"..........."


장성대군의 날카로운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린 선주.


"그래! 보아하니 너는 뭔가 말 못 할 사연이 많아 보이는구나! 내 너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 더는 묻지 않겠다."


"네! 감사합니다."


"다만... 혹시라도 네가 나와 더 친해져서, 언젠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온다면, 그때는 꼭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구나!"


"네! 그리 하겠습니다."


선주는 대답을 하며 장성대군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나이는 우리 환오빠랑 비슷해 보이는데... 나이에 비해 기품이 넘치면서, 이상하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선주는 실로 오랜만에 믿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러나, 네가 방금 사당패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넌 사당패에서 무엇을 했었느냐?"


"춤을 추었습니다."


"춤... 을 추었다?"


선주의 대답에 눈이 동그래져 다시 한번 선주의 얼굴을 쳐다보는 장성대군.


"혹시... 네가 바로 그... 소문이 자자한... 여인이더냐?"


"네? 어떤 소문인지...?"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춤을 추는 연화각의 여인이 바로 네가 아니냐고 묻는 거다!"


"소문이 자자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 춤을 좋아해서 찾는 분들이 요즘 연화각에 꽤 오십니다."


그러자 장성대군은 무릎을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로다!"


"나도 사실은 오늘 그 소문의 여인을 만나고 싶어서 연화각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선미 너였다니!"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구나! 하하하!"

"그러하면, 오늘 너와 나의 만남을 기념할만한 춤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네! 그럼..."


장성대군의 말이 끝나자 선주는 조용히 일어나 가야금을 불렀다.

잠시 후 가야금 연주자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선미는 장성대군 일행을 등지고 섰다.


'호... 뒤로 돌아섰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장성대군.


- 띠잉~ 띠잉~ -


가야금 연주가 시작되자 선미는 리듬을 타며 천천히 몸을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참으로 예쁜 움직임이로다!'


장성대군이 선주의 예쁜 춤 선에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빨라지는 가야금 연주!


- 띵띠딩띵~ 띵띠딩띵 -


그러자 계속 등을 보이며 천천히 움직이던 선미가, 가야금 연주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장성대군을 바라보았다.


"헉"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은 장성대군.

그도 그럴 것이, 선주의 얼굴은 이미 방금 전에 그가 보았던 그 조용한 여인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뇌쇄적인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격렬하게 현대의 춤(댄스)을 시전하는 선주!

두 팔을 올리고 손끝을 움직이며, 눈빛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선주의 강렬한 에너지가 장성대군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버님! 제가 이런 좋은 구경을 하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나 봅니다...'


이 날, 현대의 아이돌 연습생이 추는 격렬한 댄스가 평온하게 살던 조선 대군의 마음을 마구마구 들쑤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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