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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8. 2023

30화. 재회... 엇갈린 마음

조선 분식집3

한편, 같은 시간 지혜의 집에서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지혜와 그녀를 만류하는 사월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아씨! 또 어디를 가시려고 이러신대요?"


"어디긴? 박주모네... 연아네 분식집에 가려는 것이지! 너도 어서 준비를 하거라."


"아씨... 얼마 전에도 외출이 잦다고 대감마님께 그렇게 혼이 나셨으면서... 거길 또 가신단 말입니까?"


"그 문제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아버님도 출타 중이시고... 마침 어머님도 안 계시니 서둘러 다녀오면 아무 일 없을 것이야."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러느냐?"


"지난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으면서..."

"아니,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박주모네에 무슨 꿀을 발라놓으셨습니까? 요즘 들어 너무 자주 가시는 것 아니에요?"


"얘가 뭐래? 너도 그 집 음식을 좋아하면서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니?"


"그야 분명... 아씨 말씀처럼 박주모네 음식이 맛은 있지요!"

"하지만 저희 같은 천 것들도 아니고, 양반집 아씨께서 그런 험한 곳에 다니는 것이 윗분들 보시기에 그리 좋지는 않아 보입니다요."


"무슨 소리?"

"듣자 하니 소문이 자자해서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찾는다고 하던데?"

"조대감 댁 희인언니도 박대감 댁 지은이도 그렇게 자주 간다더만?"


'그 소식은 또 언제 들으셨대...'


"그거야... 그렇지만..."

"아휴 알겠습니다. 대신, 대감마님께 또 혼나셔도 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혼이 나도 내가 혼이 나면 되니까..."


"아씨께서 혼나시면 전 마님께 더 심하게 혼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버님 어머님 오시기 전에 한시라도 더 서둘러 가야지! 자 어서 가서 밥만 먹고 돌아오자꾸나. 서두르자."


"예... 그럼 가마를 부르겠습니다."


"그래."


가마를 부르러 가면서 사월은 생각했다.


'아씨도 참 솔직하지 못하시게... 밥은 무슨 밥? 사실은 그 집 환도령 보러 가는 거면서...'

'그나저나, 대체 어쩌시려고 저러시는지...? 최판서댁 아드님과 혼담이 오가는 걸 아시면서...'

'게다가 주막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물론 환도령이 잘 생기고 좋은 사람인 건 알겠지만...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에휴... 윗분들 사정이야 내가 걱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잘하시겠지?"

"나야 아씨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지 뭐~ 오늘은 뭘 먹을까~ 흥흥~"


사실 환의 음식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사월이었다.


**********


어느덧 분식집에 도착한 선주와 장성대군 일행.

점심식사시간이 꽤 지난 후였기에 일행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분식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분식집 안에서는 늦은 점심을 먹는 손님들이 있었고, 연아와 진아가 분주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일행은 입구 근처의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를 알아챈 진아가 부지런히 달려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나으리! 또 찾아주셨네요."


그런 진아를 보고 구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그래! 그간 잘 지냈니?"


"예, 나으리!"


"오늘은 엄청 어여쁜 아씨랑 같이 오셨네요!"


선주를 향한 진아의 칭찬에 장성대군이 흐뭇한 듯 선주와 진아를 번갈아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 녀석! 네가 보기에도 이 아씨가 어여쁘게 보이느냐?"


"그럼요! 어여쁘십니다. 곱디곱습니다."


"암! 그렇지~ 우리 선미가 아주 어여쁘고 곱디곱지! 하하하"


"그럼, 오늘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그게..."


그때였다. 구길이 주문을 하려는데 갑자기 한 사내가 주막집 입구로 들어오더니, 일행을 향해 급히 다가왔다.

장성대군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사내.

그런 그를 장성대군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야~ 자네도 왔구먼! 마침 잘 됐네. 우리도 막 음식을 시키려고 했는데, 자네도 여기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세!"


"아닙니다. 그보다도..."


사내는 말꼬리를 흐리며 구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그게 실은..."


그는 구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은밀히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선주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과 지금의 이 상황이 뭔가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누구... 지?'


잠시 후 사내의 말을 들은 구길이 장성대군에게 말을 건넸다.


"선비님. 아무래도 지금 당장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아니... 이놈아 지금 막 왔는데 가긴 어딜 가?"


"그게... 궁... 아니 선비님의 집안에 지금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밥도 못 먹고 가야 한단 말이냐?"


"그게..."


구길은 장성대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낮은 어조로 이야기했다.


"세자저하께서..."


"뭐? 형님이?"


구길의 말에 갑자기 얼굴빛이 변한 장성대군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표정으로 선주에게 말했다.


"선미야... 이걸 어쩌면 좋겠느냐? 아무래도 내 지금 급하게 어딜 좀 가봐야 할 것 같구나!"


그러자 선주는 괜찮다는 듯 장성대군에게 말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있으시면 어서 가보셔야죠!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가보세요."


"그래도 되겠느냐?"


"예 선비님!"


"아이고 이 착한 것. 그럼 내 당장 가마를 불러주마! 여보시게!"


그러자 선주가 손사래를 치며 장성대군에게 말했다.


"선비님. 그러지 마세요. 저는 기왕 여기 온 김에 밥을 좀 먹고 가겠습니다."


"오... 그럴래? 그래 그래... 네가 여기에 오고 싶어 했지..."

"그럼 내 계산을 하고 갈 테니 마음껏 먹고 가거라."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선비님은 어서 서둘러 가세요."


"알겠다. 네가 나를 이리 배려해 주니, 내 고맙기 그지없구나!"

"그럼. 내 오늘은 별수 없어 그냥 가지만, 대신 다음번에 꼭 너와 다시 이곳을 오겠다고 약조하마."


"예, 선비님."


"그럼 나 먼저 간다 선미야!"


"예"


장성대군은 선주에게 인사를 하고, 일행과 함께 주막을 빠져나왔다.

주막의 근처에는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성대군을 찾은 사내의 정체는 그의 호위무사 윤수.


"수야!" (수 : 장성대군이 윤수를 부를 때 쓰는 이름)"


"예, 대군마마!"


"형님이 또 쓰러지셨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예, 대군마마! 저도 자세한 정황은 잘 모릅니다. 단지, 세자마마가 쓰러지셨고, 이번에는 용태가 상당히 위중하다고 하십니다."


"아... 요즘 형님이 무척 건강해 보이셔서 마음을 놓고 있었거늘... 어째서 갑자기 또..."


"서둘러 환궁하셔야 할 듯합니다."


"알겠다. 어서 가자꾸나!"


"예!"


장성대군 일행은 준비된 말을 타고 급히 궁으로 향했다.


***********


한편, 홀로 남은 선주는 진아를 다시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넌, 이름이 어떻게 되니?"


"진아라고 합니다."


"예쁜 이름이네... 그래 진아야! 이 집에선 무엇을 먹으면 되니? 계란이불밥하고 김치볶음밥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맞니?"


"예, 그럼요! 계란이불밥도 김치볶음밥도 아주 맛이 좋습니다. 아씨!"


"그럼, 그걸로 할까?"


"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 집에는 라면과 김밥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맛이 좋아요~"


'라면과 김밥... 이라고?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지?'


"얘! 너 방금 라면과 김밥이라고 했니?"


진아의 입에서 나온 라면과 김밥이란 말에 선주는 깜짝 놀라 물었다.


"예... 라면과 김밥 맞습니다. 아씨도 처음 들어보시죠? 라면과 김밥은 이 한양 땅에서 우리 집에만 있으니까요~" 


"혹시 매콤한 맛을 좋아하신다면 고춧가루를 많이 넣은 <신라면>도 있습니다."


'신라면... 이라니? 혹시 어쩌면...'


'신라면'이라는 말에 확신이 생긴 선주는 조심스레 진아에게 물었다.


"얘... 혹시 너희 주막... 분식집에서 음식은 누가 만드니?"


"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요?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아... 그냥... 음식의 이름들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궁금해서..."


"그랬구나! 혹시 아씨도 우리 <환사부>의 소문을 들은 거예요?"


"환사부... 라고?"


"예! 우리 분식집의 음식은 모두 환사부가 만드세요!"


'환'이라는 이름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선주.


"호... 혹시... 그 환사부의 이름이 김환이니?"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아에게 물었다.


"어! 아씨가 우리 사부의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예! 우리 사부의 이름은 <김환>이에요."


선주는 환의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오... 오빠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조선으로 타임루프한 뒤로 어느덧 1년... 두려움에 떨고 눈물 흘렸던 날들이 그 얼마였던가?

그런데, 그런 일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게... 오빠가 자신이 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마치 자신을 기다리듯 분식집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선주는 벌떡 일어나 부엌을 향해 달려갔다.


"아... 아씨?"


놀란 진아가 급하게 선주를 불렀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이미 부엌 앞에서 멈춘 뒤였다.


"아... 아아..."


그곳에는 그녀의 오빠 '환'이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즐겁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선주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으흑 으흑 으흑 -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모습은, 뒤따라온 진아와 곁에서 평상을 닦고 있던 연아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저 여자는 또 누구인데 남의 집 부엌에서 우는 거야? 장사 방해되게...'


"이, 이보시오..."


선주를 만류하려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연아.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추어설 수밖에 없었다.

선주가 부엌을 향해 크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오... 오빠! 오빠! 오빠!"


'오... 빠...?"

'오빠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말...


"오빠!"


하지만 정작 환은 그런 그녀의 절규를 듣지 못했다. 자욱한 연기와 시끄러운 소리 속에 밥을 볶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으흑흑... 오빠..."


"사부... 저기..."


다행히 정훈이 뒤늦게 그 소리를 듣고 부엌 입구에 서있는 선주를 발견했다.


"사부... 사부... 웬 아씨가 부엌 앞에서 울고 있는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열심히 밥을 볶던 환은 그제야 눈을 닦으며 정훈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 툭 -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주걱을 떨어뜨린 환.

그곳에는 꿈에도 그리던 동생 선주가 서있었다.


"서... 선주야!"


환은 바로 달려 나가 선주를 부둥켜안았다.


"오빠!"


"선주야..."


두 남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두 남녀의 강렬한 포옹을 눈앞에서 지켜본 연아는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남사스러워라..."


하지만 어째서인지 부끄러운 와중에도 이상하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여자는 대체 뭐야...'


이때 마침 분식집으로 들어오던 지혜와 사월.


"박주모 우리 왔소~ 어..."


반갑게 인사하며 분식집으로 들어오던 지혜와 사월도 눈앞에 펼쳐진 두 남녀의 모습에 크게 당황하였다.


"어머나!" 

"백주 대낮부터 남녀가 저게 뭐 하는 거래요? 아이 망측해라..."


사월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얼굴을 가린 두 손 틈으로 이를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안 그렇습니까 아씨?"


하지만 지혜는 사월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놀란 표정으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대낮에 두 사람을 낯 뜨겁게 한 남녀의 주인공이, 자신이 연모해 마지않던 환이었기 때문이다.

사월도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는 걱정스러운 듯 지혜를 쳐다보았다.


"아... 아씨...?"


"사... 월... 아... 생각해 보니 아버님이 평소보다 빨리 돌아오실 것 같구나..."


"아씨..."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다..."


"예... 아씨..."


지혜는 사월과 함께 도망치듯 분식집을 빠져나왔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서러움의 눈물이 나와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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