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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microambitious Sep 07. 2021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 그의 부르튼 발이 멈추어 선 곳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부풀어오른 발 ( Οἰδίπους)”이라는 뜻이다. 테베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한 아버지 왕은 갓 태어난 아기의 발목에 쇠꼬챙이를 끼워 짐승처럼 내던지고, 아기는 그 상처로 부풀어오른 발목 때문에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얻는다. 운명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국 운명 앞에 소환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의 비극적 운명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탄생 이후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변주되면서, 목적지를 알 길 없이 삶의 한복판을 헤매는 우리, 모든 인간들의 표상이 된다.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 억 개의 별>은 그렇게 변주된 또 한 명의 오이디푸스인 무영, 그리고 그의 부르튼 발이 결국 멈추어 선 곳에 대한 이야기다.


<일억별> 속 무영의 여정은 많은 부분 오이디푸스의 그것과 닮았다. 공포에 질린 아버지 때문에 짐승처럼 내쳐졌던 오이디푸스가 그랬듯, 무영은 아버지의 광기 어린 분노로 인해 가족을 잃고 살인자의 아들이 된다. 오이디푸스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도 연민에 흔들려 아기를 살려 멀리 떠나 보낸 테베 왕실의 목동처럼, 정신과 의사 경모는 끔찍한 기억과 사회적 낙인 속에 괴롭게 자라날 어린 무영에 대한 연민으로 그를 운명 밖으로 떠나 보낸다.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끔찍한 신탁을 피해 떠돌다 결국 고향에 돌아오고 마는 오이디푸스처럼, 무영 역시 자신의 과거를 모른 채 떠돌다 결국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진국에게로 돌아온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유일한 인간이었던 오이디푸스처럼, 무영 역시 특유의 명석한 두뇌와 통찰력으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비범함을 갖췄다.


그러나 자신을 왕으로 맞아준 테베 시민을 아끼고 사랑했던 오이디푸스와 달리 무영은 사람을, 사랑을 믿지 않는다. 누구보다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무영에게 사람들의 가장된 사랑과 동정은 언제나 이기적인 본심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내 밑바닥을 훤히 꿰뚫어볼 것 같은 기분 나쁜 눈과 끔찍한 화상 흉터를 지닌 고아에게 세상 속 그 누구도 진실된 사랑을, 사람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던 무영은 그런 자신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처음으로 번역되지 않는 진심을 말하는 사람 진강을 만난다. 계속 상처 입을 자신이 없어 차라리 마음을 없애기로 한 무영은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졌으면서도 사람과 사랑을 믿는 그녀가 궁금해진다. 진강 역시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무영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린다. ‘좋은 사람이 되라’는 주문과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대답을 시작으로 둘은 서로에게 한없이 빠져든다. 무영과 진강이 직접 부른 드라마 OST의 제목이 <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해 늘 공허함을 안고 살던 무영과 진강은 운명이 이끄는 대로 서로에게 도착한 뒤, 운명을 믿던 시절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내하는 길잡이 별이 된다. 무영이의 기억을 찾으러 간 곳에서 진강 역시 감춰왔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서로의 어깨 위 화상이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되는 것에 기뻐하면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종착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무영의 부르튼 발은 그렇게 진강에게서 잠시 그 고단한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비로소 얻은 무영의 안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별을 꿈꾸었기 때문일까. 운명은 그들을 예비된 파국으로 내몬다. 이 드라마의 진정한 빌런은 세란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 모두를 한자리에 소환한 운명이다. 그래서 무영은 ‘세란’이 아닌 ‘무언가가’ 나를 너무 많이 가지고 놀아서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고 말한다. 드디어 깨달았던 것이다, 신처럼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이 결국 신이 예비한 운명에 철저히 지배당한 장기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오이디푸스가 같은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오만을 뉘우치며 눈을 찔렀듯, 무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오만과 과오를 인정하고 담담히 최후를 준비한다. 사회적 규범과 관객의 기대지평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멜로드라마의 관습 대로, 이 드라마는 결국 근친상간이라는 절대 금기를 어기지 않고, 무영 역시 오이디푸스가 그랬던 것처럼 처절히 혼자 남지 않는다. 무영의 진심은 결국 진강에게 전해지고, 무영과 진강은 마지막 순간 서로가 함께임을 확인하며 눈을 감는다.


조금은 뻔한 이 결말이 판타지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 작품을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한계라 해도, 나는 언제나 근엄한 비극이 전해주는 진실보다 멜로드라마의 안전한 선택이 주는 위안이 더 좋다. 사랑이 없다고 믿었던 무영의 마지막 말이 ‘사랑’인 것이 좋다. “어느 날 오후 무언가가 그리워서 길을 떠난 뒤, 걷고 걷고 또 걷고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히다가 진강에게 도착”했다고 말하는 무영이 별이 되러 가는 길에 진강이 함께여서 안심이다. 드디어 별이 된 그들은 이제 영원히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빛나는 일억개의 별이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무영이의 부르튼 발은 이제서야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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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유튜브 채널에서 국/영문 오디오북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qg4EtrbmpjQ


https://youtu.be/a_7ti1vb1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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