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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권위의식에 대한 내 생각의 잘못됨

부제: 6년 차 간호사가 바라본 중증외상센터

by 통역하는 캡틴J

새벽 수술을 마치고 어느 퇴근길:


하루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 갑자기 한 번도 눈길이 가지 않던 수술 필드에 눈이 갔다.


그동안 압베(맹장염 수술)는 나에게 비교적 가벼운 수술로 여기던 것이었다. 작게 구멍을 두어 개 뚫고 포트를 넣어 카메라를 보면서 염증이 발견된 꼬리를 자르고 지지고 봉합한다. 마취 텐트 너머로 수백 번도 더 바라보던 광경이다.


이날 우연히 수술 상황을 보고자 텐팅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들어 몰래(?) 복강경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어느 혈관이 잘렸던 것이다(물론 고의성 없이).


순식간에 피가 솟구쳐 나오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내 머리와 손이 본능적으로 수액을 틀고 에페드린을 바로 잴 준비를 하더라.


최대한 그 혈관을 빠르게 지혈하려고 애쓰는 서전을 보며 그동안 압베를 한없이 가벼운 수술로 여겼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 세상에 모든 수술 중 작거나 가벼운 수술은 결코 없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의사의 권위성에 대한 내 생각의 잘못됨:


전역 전에 의사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정도 극복한 거 같아 다행이다.


1. 우선 마취간호라는 분야를 배우면서 극복한 것도 있다.


마취간호는 특수간호 또는 특수부서 간호에 해당한다. 군의 경우 최소 6개월의 수련장교 직위를 받는 선발 과정을 거쳐 진입이 가능하다. 6개월간 사전에 짜인 빽빽한 커리큘럼에 따라 마취 의사의 이론 교육이 가미된 실습을 거치고 나서 현장에 투입되면 의사와 교대로 수술방을 지킨다. 최소한 레지던트 수준으로는 “혼자 수술방을 지킬 수 있도록” 공부도 정말 많이 하고 긴급 상황에 잘 대비하도록 민첩성을 갖춰야 하는 게 마취간호사이다.


개인적으로 마취간호는 그나마 독립성이 보장된 특수간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병동에서 의사의 오더를 받아 처방에 따라 투약하는 것이라면 내가 겪은 마취간호는 수술실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먼저 투약을 하고 나중에 처방을 받았었다. 그리고 환자가 깨지 않도록 바이탈을 관찰하면서 마취 약물을 지속적으로 조절한다.


아마도 나는 마취과를 경험하며 내가 의사다라는 부질없는 생각보다는 의사가 가진 어떤 책임감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명감에 물든 것일 것이다.


2. 내가 의사를 달리본 계기 중 또 하나는 정말 존경했던 000 군의관에게 마취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배운 점이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그간 내가 본 마취과 의사들은 마취에 대해 성심성의껏 가르쳐주고 내 질문에 하나하나 상세히 답해주었다. 여자든 남자든 나는 이들의 그런 노력이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하는 과정이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3. 마지막으로, 나는 얼마 전 읽은 골든아워(저: 이국종)를 탐독하며 의사를 단순히 권위적인 존재라 생각했던 나의 편협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사는 상황을 주도해야 하고 결정을 내리는 결정권자이다. 그런 의사의 말을 가벼이 여기고 그의 지시사항을 정확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환자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며, 팀이라는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의사의 권위는 필요이상일 경우 해가 되지만 필요악은 분명 아니었다.




중증외상센터를 보고 난 후:


얼마 전 입소문을 톡톡히 탔던 중증외상센터를 보게 되었다. 6년 차 간호사가 본 그 드라마는 현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실제로 병원에서 발생 가능한 사건들을 하나의 로직으로 잘 엮어낸 각본 같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잘하는 의사, 유닛의 결성, 타 의사의 시기심, 해외파병 군의관, 외상센터 헬기, 암묵적인 거래 등 비록 대사는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이과의 관점으로 써 내려간 사실적 묘사 같았지만 그만큼 다양한 현실을 잘 그려낸 것으로 보였다.


사실 현실은 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오죽하면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취과는 환자를 재우는 약물 중 수면과 관련된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진통에 쓰이는 마약류의 약물이 많아 간호사들이 수시로 수량을 체크하고 심지어 시린지에 쓰고 남은 약물은 정확히 용량(ml)을 맞춰 약국에 반납해야 한다. 어쩌면 타부서보다 위험성 있는 요소가 많을 수도 있다.


내가 근무했던 병원에서도 마약과 관련된 도난이라던지 투약 사고부터 마취 합병증, 비리와 관료주의, 성희롱과 문란한 연애사 그리고 태움, 심지어 자살 사건도 종종 발생했었다. 참으로 드라마라면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을 관찰하거나 겪어내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자기 일을 잘해도 본전인 모든 의사 와 간호사 분들께 경의를 표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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