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둘러싼 대립
통대 1학년 수업 때 한강의 연작소설인 『채식주의자』번역본 대해 한동안 토론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의역이 지나쳐 오역으로 간 것인지, 아니면 이 정도의 의역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를 했었고, 통역과 번역을 배우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만큼 의역이냐 직역이냐의 문제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기 힘들다. 결국 의역을 할지 직역을 할지 정할 수 있는 사람은 번역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사회 분위기가 결정해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도 번역을 수주받아 납품을 해보았지만 번역 업계에서는 번역가를 마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번역가의 판단은 배제한 채 원문의 요소를 빠짐없이 욱여넣는 직역을 하고 안 그러면 다른 이를 쓰겠다는 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번역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사실은 자주 망각되는 듯하다.
원래의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려면 두 언어의 문법은 물론 자연스러운 어순과 표현까지 통달해야 한다.
그다음 번역가의 성향에 따라 의역, 직역, 전문성 등의 요소가 가미된다. 그러나 한국 번역 업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의역보다 직역을 선호하는 것 같다. 마치 원래의 것은 최대한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경직적인 사회 분위기가 번역 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채식주의자」의 번역본이었다.
“단어를 일 대 일로 옮기는 충실성에 기반한 번역을 선호해 온 한국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비판을 받았지만, 원작을 영어 사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재탄생시켰다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한다”라는 한국외국어대의 교수의 의견이 있었으나,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를 왜곡하고 단순화하는가 하면 자의적인 번역 삭제로 소설 전체의 이해도를 떨어뜨린 점도 문제입니다.”라는 한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의견도 있었다.
비판하는 측의 의견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의역이 얼마나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논란이 번역이라는 활동의 창작성을 무시하는 방증인 것 같아 안타깝다.
숱한 논란에 대해 「채식주의자」 번역가가 보인 태도와 의견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어떤 두 언어에서도 문법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없으며, 단어 역시 각기 다르고, 심지어 구두점조차도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라며 "문자 그대로 옮긴 번역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창조적이지 않은 번역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그녀의 의견은 경직되고 답답한 한국 번역 업계의 흐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같아 속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