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여름, 동유럽에서...
“넌 온실 속의 화초 같구나.”
이 말을 들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공무원이신 부모님 밑에서 정말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던 어느 생도 시절이었다. 우연히 교환학생으로 헝가리에 있던 친구에게 찾아갈 기회가 생겼다. 귀한 여름방학을 맞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10시간 이상의 비행 끝에 헝가리에 도착한 것으로 시작된 나의 여행은 22살의 어린 나로서, 또 생도로서 일생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일탈로 점철된 하나의 성장기였다. 후끈하지만 건조한 동유럽의 여름 태양빛 아래 나와 친구는 걷고 또 걸었다.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이라도 한 듯한 피로를 안고 친구가 예약한 호스텔에 들어갔던 나는 즉시 문화충격을 접했다.
남녀 혼합 호스텔(mixed dorm)이었다.
모르는 남성과 한 방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무서웠다. 저녁 10시 이후로는 밖에 나가지 않던 나였지만 그보다도 훨씬 늦은 시간에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러 나가기도 했다. 차가 쌩쌩 다니는 다리의 난간 위에 앉아 맥주를 손에 든 채 야경을 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정과 설렘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남의 나라에 제 발로 찾아온 이방인을 선뜻 도와준 선한 사람들과, 우리나라라면 난리가 났을 엉성한 교통 서비스도 기억에 남는다. 온도차가 심한 동유럽에서 한여름 옷차림으로 심야버스를 탔다가 시베리아에 온 것처럼 오들오들 떨며 아침을 맞이한 기억도 있다.
청결과 질서로 각 잡힌 나의 생활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일탈이라면 일탈이었다. 그 일탈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고 또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그 이상의 것들이었다. 모든 게 신기하고 놀랍고, 겁이 났던 그런 경험들을, 그 친구가 함께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헝가리의 공항에 앉아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보게 된다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법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이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복잡한 감정을 표출하는 눈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눈물을 쏟아낸 후에야 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는 차디찬 일상으로 돌아왔고 마치 톱니바퀴처럼 원래의 자리에서 기능했으나 그 속은 이전과 달랐다. 내 머릿속에 서재가 있다면 헝가리에서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책이 한편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칠 때마다 이 책을 꺼내보며 나는 남은 생도 생활을 또 버틸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 삶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양분을 얻기 위한 활동으로 여행은 값진 재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