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 명작이 소개해준 중국어

by 달빛그림자

학창 시절, 나는 아무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아이였다.

친구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공부도 잘하지 않았고, 별난 재주도 없었다.

거기다 소심하기는 얼마나 소심한지 중학교 때까지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게도 드디어 관심이 가는 무언가가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의 생일날, 나름 친한 친구 몇 명이 친구집에 스물스물 모여들었고

생일 턱으로 짜장면을 먹으며 친구 오빠가 빌려놓은 비디오 한 편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름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영화 '영웅본색2'


짜장면을 우물거리며 영화를 보던 나는 어느새 화면 속 낯선 남자의 눈빛에 홀딱 빠져들었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장국영', 내 인생의 영원한 우상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장국영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수화기를 쥔 채

아내에게 딸의 이름을 지어준 뒤 죽어가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영웅본색2- 장국영.jpg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컴백해야 했다.

'영웅본색2'는 그날 이후 내 인생 명작이 됐고, 나는 홍콩 영화 매니아로 거듭났다.

당시 90년대 초반은 홍콩 영화가 한창 붐을 이루던 시대였다.

VHS 테이프를 빌려주던 비디오 가게에 가면 일주일에 3, 4편 이상의 신작 홍콩 영화가 나를 반겼다.

나는 예전부터 홍콩영화를 즐겨 보던 작은 오빠와 함께 매주 2, 3편의 홍콩 영화를 섭렵했다.

홍콩 영화가 얼마나 좋았던지 하얀 연습장에 내가 본 홍콩 영화 제목과 감독, 배우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 정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홍콩 영화 사랑은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였던 8, 90년대에는 다양한 장르의 홍콩 영화가 쏟아졌다.

당시에는 한국 영화가 방화라 불리며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영화의 수준이 아직 다른 나라에

훨씬 미치기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영화가 호황을 누리며 세계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당시 아이들은 유명 스타들이 나오는

헐리웃 영화에 열광했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홍콩 영화였다.

그것이 액션이든 느와르든 무협이나 코미디, 로맨스 뭐든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홍콩 영화가 유치하다고 했지만 내게는 한국인의 정서에 딱 맞는 영화였다.


그렇게 한창 홍콩 영화에 빠져 있던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비디오 화면 속 자막 하나가 문제였다. 코미디 영화였는데 자막 아래 떡하니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에라이, 이 영구와 땡칠이 같은 녀석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영구와 땡칠이는 한국 코미디에 나오는 건데 어떻게 홍콩 영화 자막에

영구와 땡칠이를 쓸 수 있지? 대체 원어로는 뭐라고 말한 걸까?'

그것이 중국어에 대한 나의 첫 호기심이었다.

홍콩 영화가 좋아질수록 저 영화 속 배우들이 중국어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자막이 아니라 중국어를 원어로 알아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워낙 중국어 무식자였기 때문에 홍콩 영화 속 중국어가 보통화가 아닌

광둥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중국 사람들은 모두 같은 중국어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중어중문학과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나 스스로 중국어를 배워 언젠가 국영이 오빠가 있는 홍콩을 찾아 가리라!'

하지만 아뿔사, 내게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