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570돌 한글날이었다.
한글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명확한
세계 유일의 문자라고 한다. 이런 글자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외국인들에게는 배우기에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하지만 이는 조사나 다양한 어미 등 문법이
다소 복잡해서일 뿐 글자 자체는 누구나 단시간에 쉽게
익힐 수 있는 언어다. 외국어인 중국어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한글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꾸며주는 말이나 하나의 뜻을 표현하는 단어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말 중에는 색깔에 관한 단어가 상당히 많다.
색깔을 지칭하는 명사도 많지만 용언이나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해주는 품사인 부사도 많은 편이다.
그런 부사 중에 나는 '알록달록'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알록달록이란 말만 들어도 어떤 뜻일지 어감으로 추측이 될 만큼
단어에 생동감이 있고 갖가지 색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나는 뭔가를 관찰하고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자동차라고 하면 하얀색, 까만색, 흔히 쥐색이라고
했던 은회색이 대부분이었다. 5, 6살 무렵의 나는 어째서 모든
자동차는 그 세 가지 색 중에 하나인지 궁금해 했다.
'노란색이나 초록색, 갈색 차도 있을 순 없을까? 아님, 차를 반으로
나눠 한쪽은 빨간색, 다른 한쪽은 파란색인 차는 있으면 안 되나?
그것도 아니면 푸른색 위에 보라색 물방울 무늬가 그려져
있다든지, 무지개색 자동차는 왜 없는 거지?'
실제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세상에 수많은 색깔이 있는데
어째서 모든 차가 단조롭고 획일적인 색깔이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기술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로부터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빨간색이나 파란색, 노란색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초록색이나 갈색 등 더 다양한 색의 차들도 해가 지날수록
하나둘 더 늘어났다. 이렇게 자동차의 색깔에서 시작됐던
내 궁금증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색깔론으로까지 연장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흑과 백이라고 해서
나의 입장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밝히길 바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나는 그 역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수천수만 가지 색깔이 있는데 어째서
흰색과 검은색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
물론 다수는 흰색과 검은색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나는 보라색이나 청록색일 수도 있는데.
분명히 많은 색깔이 있는데 어째서 꼭 둘 중의 하나만 골라야 하지?
무엇 때문에 다수의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동그라미인지 가위인지, 예스인지 노인지를
밝히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나는 때로는 흰색이기도
때로는 검은색일 때도 있으며, 또 때로는 자주색일 때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20대 후반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내가 참 획일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들이 다 있었는데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람들은 각각의 생김새만큼이나 생활방식도,
생각도 다양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좀 더 다양한
색깔이 인정받는 곳이 성숙한 사회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나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너는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이런 색도 저런 색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알록달록이란 말을 좋아한다.
굳이 한 가지 색깔로 나를, 너를, 그리고 우리를 정의할 필요없는
'알록달록'이야말로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다.
내가 꼭 흰색이나 검은색이 아니면 어떠랴.
또 때로는 흰색이나 검은색이면 어떠랴.
그렇다고 나란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다만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어떤 색의 편에 서고 싶지 않다.
조금 튀면 어떠랴. 나는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나를 물들여도
괜찮은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