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와 두부

by 달빛그림자

나는 어려서부터 입이 짧았는데 고집도 무지 센 편이라

내가 보기에 맛이 없어 보이는 음식은 입에 잘 대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는 이런 내 편식 습관을 고쳐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셨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번은 어머니가 내 손에 잘 깎은 당근 하나를 통째로

쥐어주며 꼭 다 먹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고집은

세지만 나름 효녀라 자부했던 나는 일단 당근을 손에 쥐고

방으로 돌아왔다. 몇 입 먹어봤지만 역시나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한두 조각도 힘든데 통으로 당근을 먹기란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근을 아파트 11층 창문 밖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잠시 후 다 먹었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천연덕스럽게는 전혀

아니고 세상 어색하게 "다 먹었어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그 말을 믿으셨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당근을 통으로 씹어먹어야 하는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끈질기고 센 고집 덕분(?)이었는지 나는 결국 편식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됐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이나

고기, 햄 같은 것으로 이른바 초딩 입맛의 소유자다.

나도 스스로 가리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특히 내가 못 먹는 게 아닌 안 먹는 음식이나 식재료 중에는

남들이 대부분 먹는 것도 상당히 많다. 이를 테면 당근을 비롯해

감, 멜론, 순대 간, 회, 날것인 해산물, 커피 등 다양한데

그 중에는 정말 세상 사람 다 먹는 두부도 있다.


두부는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한 음식에 어울리는 식품이다.

국이나 찌개는 물론이거니와 조림에 들어가기도 하며 수육이나

묵은지, 김치볶음과도 훌륭하게 어울리고, 두부 자체로도 갖가지

음식이 가능하다. 듣자하니 두부는 맛과 향이 좋은데다 반질반질

윤이 나고 모양도 반듯한 다섯 가지 맛을 갖춘 식품이라고

한다. 심지어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콩으로 만들어 단백질이

풍부하고 식물성 지방이 들어 있어 영양도 만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 두부를 먹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껏 나이 마흔이 넘도록 사는 동안 고소하고

맛있는 두부 좀 먹어보라며 옆구리를 찌른 사람들이 한둘이었겠는가.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 주변의 지인들도 생각보다

맛있으니 한번 시도해보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않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부가 어째서 맛이 있는지, 무슨 향이 좋은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콩자반이나 콩밥은 먹지만 두부의 향은

어쩐지 비릿하게 느껴지며 물컹하는 식감도 마음에 들지 않고

고소하다는 맛도 가끔은 역하게 느껴진다. 먹어보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내 취향이나 입맛과는 영 맞지 않았다.


반면 어렸을 때는 먹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잘 먹게 된

식품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지다. 어린 시절 내가 보기에

가지는 보라빛 색깔도 식욕을 자극하지 않을 뿐더러 안에

연두색 속살(?)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가

가지를 볶아주셨지만 입에 댄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지가 흔히 접하는 음식이 아니기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 하던 가지를 먹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바로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는데 본래

중국 사람들은 다양한 가지 요리를 종종 식탁에 올리며,

사진을 찍을 때도 우리가 '치즈'라고 하는 것처럼

'치에즈(가지의 중국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만큼 가지는 중국에서 흔하고 친숙한 식재료라 하겠다.


나는 평소 입이 아주 짧은 편이지만 외국에만 나가면

안 먹던 음식에 도전해보는 희한한 도전 정신을 갖고 있다.

아마도 외국은 자주 가는 곳이 아니고, 그때 아니면 또 먹을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입맛에 맞든 맞지 않든 한 번은

시도해보자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가지 역시 그래서

도전했던 식품이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 뒤에는

아주 허름한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주방장의 요리 솜씨가

일품이라 많은 한국 유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학연수를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도 친절한 어느

유학 선배의 귀띔으로 그 식당을 알게 됐다. 식당은 규모가

아주 작았지만 학생들을 상대하는 곳이었기에 상당히 많은

메뉴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본인 룸메이트를 비롯해 친구 몇 명과 그 식당에

들렀다 사람 수만큼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했었는데 그 중에

어향가지볶음도 있었다. 나는 가지의 오랜만에 보는 자태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맛 없으면 다음에 안 먹으면 되지.'란

생각으로 과감하게 가지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가져갔다.

와우, 입 안에 들어온 가지는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어향을 내는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소스맛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물컹거리기만 하고 별맛이 없는

내 머릿속 가지와는 아주 천지 차이였다. 심지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다 있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뒤로 나는 가지를 거부감 없이 먹게 됐으며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가끔 가지 요리를 먹는다.

여전히 가지는 맛있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 먹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두부와

주변 사람들이 자주 먹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게 된 가지를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좋지 않으면 그만이란 생각 말이다. 두부에 얼마나

많은 영양분이 들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해도 내가 맛이

없고 내키지 않으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내가 좋지 않고 원하지

않는데 사람들의 입맛에, 세상의 시선에 억지로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좀 별나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떠랴.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싫을 뿐인데.


가지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나는 맛이 없고 별로라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시도했을 때 내 예상이나 기대를 뛰어넘었기에

새로이 좋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싫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도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면 뜻밖에 내 취향임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억지로 좋아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나 스스로

도전하고 싶다면 그 시도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찾아내도 좋다.

당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내버려두라.

또한 당신이 싫어하던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도전해도 좋다.

남이 아닌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며 하고 싶다면 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당신 자신이 선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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