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치킨을 좋아했다.
그것이 늦은 밤 퇴근하며 아빠가 사들고 오시던
종이봉투에 들어 있던 통닭에서 시작됐는지,
1984년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는 KFC에서 시작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치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였다.
농담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한번은
이미 잠이 들었는데 아빠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말하셨다.
"치킨 사왔다, 먹고 자~!"
실제로 나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치킨 11조각이 들어 있는 KFC 치킨 버켓을 안고
그 자리에서 4조각을 먹어치운 뒤 다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결에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
완전히 체해버렸고 결국 주무시는 엄마를 깨웠다.
덕분에 아버지는 내 방으로 쫓겨나 주무셨고
나는 안방에서 손가락을 딴 뒤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보통 그렇게 심하게 체하고 나면 그 음식이 한동안
보기도 싫어진다든지, 아예 입을 안 대기도 한다는데
내게 그런 일은 1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만큼 치킨이 좋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닭으로 된 요리는 다 좋아한다.
삼계탕도 좋고, 닭볶음탕도 좋고, 닭강정도 좋고
한국 것이든 외국 것이든 닭으로 된 요리는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치킨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 요즘말로 최애 음식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닭'일 치킨이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소울푸드, 영혼의 동반자 같은 음식이 아닌가.
프라이드 치킨(Fried Chicken)이라 부르지 않으면 어떠랴.
치킨을 좋아한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것을.
물론 브랜드나 닭의 컨디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치킨에 살이 좀 부족하거나 질길 때도 있지만
웬만 하면 치킨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게다가 치킨은 여럿이 먹어도, 혼자 먹어도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다.
사실 진정한 치킨러에게는 혼자 먹는 치킨이
맛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이기는 하다.
또한 치킨은 갈수록 값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거액을 투자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확실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가성비 갑의 요리다.
돼지고기, 소고기가 맛있다고 하지만 한강에서
치맥을 하지 포맥이나 비맥을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처럼 치킨은 크지도 않은 몸으로 아주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책임지기 위해 희생해왔다.
때로는 조류독감으로 죄없는 꼬꼬닭들이
땅속에 파묻히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치킨은 무한애정과 신뢰의 대상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치킨이 튀겨지는 것 외에도
마라를 몸에 휘감거나 카레가루를 뒤집어쓰고
버터나 크림, 치즈와 콜라보를 하기도 하지만
사십 년 가까이 치킨 한 길을 걸어온 내게 으뜸은
온전히 180도의 뜨거운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진
프라이드치킨 즉, 오리지날 치킨이다.
무엇으로 맛을 덧입히는 코팅 없이
담백하면서도 짭짤한 치킨의 순수한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무슨 막이 씌워져야
치킨을 먹는 사람은 치킨계의 하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더듬어 보니 '세상에 이렇게
치킨처럼 아무 조건 없이 무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치킨' 같은 존재였던 적이 있었던가?
조금 부족할 때도, 조금 질기게 굴 때도,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원래의 모습도, 잘 보이려고
과하게 치장한 모습도 뭐든 다 예쁘다고, 귀엽다고
사랑받아 본 적이 있던가.
반대로 나는 누군가를 한 마리 오리지날 치킨처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적이 있던가?
고작 한 마리 치킨도 오랜 세월 질리지 않고
변치 않는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왜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할까?
누군가의 입속에서 맛있는 한입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치킨 아니겠는가.
문득 당신의 치킨이 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