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생기면

by 달빛그림자

어제는 나름 샐리의 법칙이 적용된 날이었다.

지하철을 오며가며 6번을 탔는데 그 중에 3번이나

전동차가 내가 승강장에 들어선 지 1분 안에 도착했다.

사실 6번 중에 한 번은 실수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탄 탓에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딱히 급한 일도 없었기에 큰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친구에게 '밥이나 먹자.'는 톡을 보내고

바로 당일 저녁에 함께 밥을 먹게 됐으니 이 정도면

샐리의 법칙 속 주인공이 된 게 아니겠는가.


대학 친구인 C는 나처럼 비혼으로 몇 달 전 독립을 했고

적당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우리는 죽고 못사는 베프 사이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한동안 연락이 끊긴 적도

있지만 요 몇 년 동안은 비혼이란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몇 달에 한 번씩은 서로 생존신고를 하며 꾸준히 만나고 있다.


어제 출판사에 들러 새로 작업할 책의 번역 계약서를 쓰고

온 터라 앞으로 친구들 만날 일도 한동안 없을 것 같아

며칠 전 난데없는 자격증 타령을 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었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특이한 자격증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분명 생계 문제에 별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사소한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친구는 계약직으로 얼마 전 임금 협상을 했는데 다른 정규직들은

임금이 인상된 데에 비해 자신과 같은 계약직 직원들은 임금이

동결되어 문득 '이 일을 정년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자격증이라도 따면 돈을 좀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친구에게 부업으로 번역을 좀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딱히 확신이 있는 권유는 아니었다.

아무튼 나도 몇 달을 놀다 새 책을 번역하게 됐고, 친구도 먹고살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터라 어제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돈으로

흘러갔다. 물론 어느 친구를 만나든 나이가 있다보니 돈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곤 하지만 어제는 유난히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나이 마흔이 훌쩍이 넘었지만 나는 부양할 남편이나 자식도 없는데다

좋아하는 꿈만 쫓으며 살던 사람이라 경제 감각은 형편없는 편이다.

약간의 주식과 또 약간의 저축이 내가 가진 자산의 전부인데 그나마

남들이 보기에는 그 나이에 겨우 그 정도 모았느냐고 할 정도 밖에

안 된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혼자 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면 초라한 말년이나 아무도 모를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그나마 지금은 '그래도 빚은 1원도 없으니까 다행이지.'라는

아큐식 정신 승리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내게는 자산을 복리로 불리는 탁월한 재테크 수완이나

돈냄새를 맡는 귀신 같은 감각은 전혀 없지만 있는 돈을

아껴쓰고 나눠쓸 줄 아는 계획성만큼은 확실히 있다.

사실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지 않는 프리랜서에게 돈을 아껴쓰고

나눠쓸 줄 아는 능력만큼 중요한 경제적 덕목은 없다.

이것은 오랜 프리랜서 생활 덕에 인이 박힌 생활 스킬이기도 한데

본래 프리랜서, 특히 번역가는 돈이 들어오는 달이 들쑥날쑥이라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들어오는 달도 있고, 100원 한 닢도 들어오지

않는 달도 있다. 때문에 굶어죽지 않으려면 돈을 계획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나는 지난 해의 수입을 기준으로 다음 해의 수입을 예상하며,

이를 바탕으로 연간 계획을 세운다. 이를 테면 일단 크게 들어갈

지출 항목이 무엇인지 꼽아 보고, 매달 고정적으로 나갈 돈을 가늠한 다음

1년이면 얼마, 한 달이면 얼마의 돈을 쓸 지를 계획한다.

물론 이렇게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꼭 예상대로 수입이 들어오거나

예산 안에서만 지출하는 것은 아니다. 늘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장치마저 없다면 나는 금세 빚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번역가들도 프리랜서이니만큼 유명한 A급 소설가처럼 대박을 꿈꾸기도

한다. 간혹 인세로 번역 계약을 한 번역가 중에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드물기 때문에 번역가가 되고 초창기에나 꾸는

꿈이다. 오히려 번역은 큰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면 기피해야 할 직업 중

하나로 그저 번역이 적성에 맞고 좋아야 오래오래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다.


직장인은 아니지만 딱히 큰돈 벌일 없는 번역가이다보니 '돈 좀 많이 벌면

좋겠다.'란 생각이 오히려 더 간절하기도 하다. 어제도 친구와 마주 앉아

"로또에 당첨되어 큰돈을 벌게 되면 집 하나 사고, 나머지는 통장에

저금해둔 뒤에 하던 일이나 계속 하며 가끔 여행이나 가면 좋겠다."라는

말도 안 되지만 가슴 설레는 소망을 이야기했더란다. 친구의 바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마 사람들 누구나 이렇게 돈이 생기면, 돈을 많이 벌면 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때로 그 바람들은 구체적인 것도 있고

뜬구름 잡는 것도 있지만 한번씩 생각해보고 계획해보는 것이

꼭 나쁘다거나 허황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래 꿈은 눈에 그려질 정도로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꾸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안 될 거야.'라든지 '내 주제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희망을 갖고 구체적인 꿈을 꿀 때 실질적인 노력도 수반되게 마련이다.


돈이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생산적인 것인가 소비적인 것인가?

당신이 하고 싶은 그 일이 당신에게는 어떤 이득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이 하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돈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이뤄줄 수 있을까?

돈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이 모든 걸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


때로는 지름신이 내려, 과시를 하고 싶은 마음에, 인생이 헛헛하게

느껴져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거나 헛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위와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라.

나는 돈 따위는 필요없고, 많이 벌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거나 뭘 원하는지 모르면서 단순히 돈만 많으면 좋겠다는

허튼 바람을 품는 대신 당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합당한

노력을 기울이라. '돈이 생기면~'이란 꿈이 꼭 꿈으로만 끝날지

현실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 알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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