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1인치

by 달빛그림자

내게는 오빠가 둘이 있는데 그 중 한 오빠는 청력이

좋지 않다.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고 보통사람보다

청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인데 몇 년전부터 보청기를

끼고 있다. 나라에서 장애 5급 카드도 줬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오빠가 집중력이 좋거나 반대로

남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이를 테면 오빠 혼자 신문을 읽고 있을 때 뒤에서

밥 먹으라고 여러 번 크게 불러도 아무 대꾸가 없다든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알아듣곤 했는데

이게 귀에 문제가 있어서일 거라곤 가족들도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오빠 스스로 남들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다고 고백한 뒤에야 청력이 떨어지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주변 상황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야 오빠가 '귀가 좀 안 들리는구나.'

생각하며 소리를 좀 더 크게 말하거나 여러 번 말하게

됐지만 밖에서는 여전히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답답해하는 오빠를 보며 어머니가

보청기라도 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오빠는 한사코

거절을 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창피한데다 스스로 그 약점을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오빠의 어떤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창피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사람들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거나 속상해할

때가 많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빠는 청력이 남들보다 약한 상태로

오랫동안 생활했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도 나오고,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갔으며, 취직도 했다. 물론 예상하다시피

그러는 사이 오빠는 사람들에게 안 받아도 될 오해도 많이

사고,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으로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으며, 전화할 때 상대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볼륨을 아주 크게 높여야 하는

불편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오빠는 보청기를

끼는 것만은 꺼려했는데 몇 년 전 잘 안 들리는 게 정말

불편했던지 아무래도 보청기를 해야겠다고 먼저 말했다.


처음에 오빠는 되도록이면 귀 밖으로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골라 보청기를 맞췄는데 당연히 소리도 전보다 잘 들리고

자신감도 많이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신체적 약점이

사람을 얼마나 움츠러들게 하는지 오빠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보청기에 적응한 오빠는 그 사이 몇 번 보청기를 바꿨는데

전보다 귀 밖으로 드러나는지 아닌지를 신경쓰지 않게 됐다.

오히려 보청기가 눈에 띄면 사람들이 "아, 귀가 좀 안 좋아요?"라고

물으며 더 신경을 써준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빠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그걸

얕잡아보거나 이용하려 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빠의 숨겨진 1인치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동안

오빠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됐고

오히려 도움을 주거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줬다.

사실 장애나 어떤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게 창피하거나

누구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사람들 누구나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약점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 약점이 도드라져 보이고

어떤 사람은 크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본인의

약점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언제나 내심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이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것인가

아닌가는 철저히 본인의 선택이다. 누구도 드러내라고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약점을 당당히 인정하고

드러낼 때 생각보다 많은 이해를 받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실례로 내가 활동하는 번역가 카페에 얼마 전부터 이제 막

번역을 시작한 회원이 질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종종 올리곤 했는데

번역을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기에 이렇게까지

질문을 올릴 일인가?'하는 질문도 많았다. 대부분 번역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는 이 회원이 질문만 던질 뿐 누가

답을 달아줘도 고맙다든지, 이해를 잘 했다든지 당최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회원의 질문들은 다소 예민한 것들이라

답글을 다는 아래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지기 일쑤였는데

정작 본인은 질문만 던지고 아무 말이 없다는 이런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는 회원들도 좀 있는 것 같았다. 딱히 뭐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질문이 반복될수록 답글을 적는 사람들의

문체에 싸늘함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런 회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회원이 따로 글을 하나 올렸다.

자신에게 경도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고 남의 감정에 공감하는 반응이

느리다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번역을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 먹었고,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도 일일이 답글에 답을 하지 못했노라고 말이다.

아마 그 회원도 다른 회원들의 반응을 느끼고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 회원의 글 덕에 많은 회원들이 그동안의 오해를 풀었고

오히려 어려운 고백을 해줘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나 역시 지금껏 그 회원의 글에 다소 냉정하고 현실적인

답글을 달아줬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의 글을 본 순간

나는 그가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약한 청력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던 오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 역시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드러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남의 숨겨진 1인치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했다.


사실 많이도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숨겨진 1인치만

보지 못해도 상대를 오해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억울한 점, 자신이 섭섭한 점, 자신이 불편한 점만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런 이유로 상대를 이기적이라고,

편협하다고, 너무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의 살짝 가려져 있던 1인치를 알게 되는 순간 오히려

내 자신이 이기적이었으며 편협했음을 절실히 깨닫기도

한다. 다만 누군가 이런 1인치를 알기 위해서는 약점을

가진 사람 스스로 '이건 사실 별 거 아냐.'라며 툭툭 털고

약점을 드러내야 한다. 세상 사람 다 가진 약점인데 굳이

창피해하거나 쭈뼛거릴 일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대수롭지 않게 나의 약점을 고백할 때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주며 이해하고 더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약간의 도움을 받는다고

뭐 어떻겠는가. 내가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불편을 느끼는 숨겨둔 1인치가 있다면 마음 편히

드러내보라.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이해해줄 것이다.

또한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 누군가의 1인치를 알아챘다면

적당히 모른 척해주라. 그것이 인간관계의 올바른 매너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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