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사건

by 달빛그림자

새롭게 심리학 관련 책을 번역하게 됐다. 타이완 서점에

가서 직접 골라온 책인데 2016년도에 나와 출간 시기도

오래 전이고 베스트셀러도 아니었는데 누군가 매대 위에

두고 간 그 책이 우연히 내 시선을 끌었다. 어쩌면 그 낡은

책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그 매대 위에 있었던 것은

나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가상이지만 심리학자인 딸과 전통적인

사고관을 가진 어머니가 교환일기를 쓰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족관계나 인간관계의 심리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는 독특한 컨셉이라 금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타이완 출판사에서 꾸물거려 번역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덕분에 그 사이 책을 일독하고 모르는

단어들을 다 찾아놨으니 기다림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은 이틀에 한 번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애를

썼는데 요 며칠은 그동안 매거진에 썼던 글들을 묶어

브런치북을 만들려다 뜻밖의 사건을 만났다. 여러 날 글도

쓰지 않은 채 이 매거진의 34개 글 중 필요한 글만 골라내고,

카테고리를 분류해 챕터도 나눈 뒤 목차의 순서도 조정하며

브런치북 만들기에 나름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문제가 생겨버렸다. 브런치북 제작하기를

클릭하고, 추천하는 글도 열심히 썼는데 막상 목차를

구성하려고 하니 34개의 글 중 22개의 글이 목차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게 아닌가?


브런치북을 제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차 만들기' 버튼을

누르면 화면 오른쪽에 그동안 썼던 글의 목록이 쭉 나오고

마우스로 클릭해 목차 안으로 끌어들이면 바로 목차가 되는데

마치 22개의 글이 이미 다른 브런치북 안에 들어간 것처럼

클릭을 하고 안으로 끌어들이려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기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어떤 시스템의 오류일까? 크롬에서 다시 시도해보고,

다른 컴퓨터로 시도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2개의 글은 분명 내 매거진 안에 있는데 브런치북 목차에 넣을 수

없었다. 전화로 문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카카오는 그것이 잘

안 되니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성질이 급한 나는 이렇게 기다리는 일을 잘 하지 못 한다.

이런 사람이 기다림의 연속인 번역을 하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고객센터에서는 언제쯤 답장을 줄 지

모르지만 이 뜻밖의 사건으로 새삼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의 인생은 크든 작든 뜻밖의 사건이 점처럼 연결돼 있으며,

나 스스로 계획을 세운다 해도 모든 일이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란 진리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글을 모아 브런치북을 만드는 일은 시스템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결국 인생이란 독불장군처럼 혼자 살 순 없는 노릇인가 보다.

'다음'의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마음먹었던 일이

어그러지니 초조하기도 하고 억울한 느낌도 있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고객센터에 보내놓은 문의에 답이 오지 않는다면

성질 급한 나는 결국 22개의 글을 밀어버리고 순서가 다소 뒤죽박죽이

되더라도 다시 올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듯하니

별안간 있던 글들이 휘리릭 사라지고 두서 없이 다시 와다닥 올라온 다음

또 다시 브런치북으로 재탄생되더라도 놀라지 마시라고

51분의 구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다.


이런저런 시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냥 쓰던 매거진에 계속 이어서 글을 쓸 작정이다.

영화 <조커(Joker)>에도 나오지 않던가.

'That'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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