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

by 달빛그림자

내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다.

모든 언어가 가능한 것은 아니고 중국어 딱 하나만 가능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인 집에서

장국영이 출연한 '영웅본색'을 본 것이 중국어를 접하는 계기가 됐다.

그 뒤로 나는 홍콩 영화 키즈가 됐고 웬만한 홍콩영화는 다 섭렵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도대체 저 배우들이 뭐라고 하는 걸까?'라는

문제였다. 물론 영화 아래에 자막이 나오지만 배우들이 하는 말을 실제로

알아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직장도 웹매거진 기자와

스포츠 에이전시 비서를 거친 뒤 20대 후반에야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역시 아주 우연이었는데 내 브런치의 '어쩌다 번역가' 매거진을 보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아무튼 나는 중국 베이징으로 1년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중국에서 올로케이션을 한다는 영화의 스크립터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간 작품 4편은 모두 줄줄이 엎어지고 말았다.

번역은 그 중간쯤에 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 번역 에이전시에 취직했다

한 달만에 때려치우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사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중국어 전공자도 아니며, 특별한 자격증이나

오랜 중국 거주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내가 우연이 아니었다면 중한번역가가

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때로는 의식적인 필사의 노력보다

무의식적인 우연의 힘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래 내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 극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10년에 걸친 내 의식적인 필사의 노력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신 그때 나름 열심히 써댔던 글들 덕에 따로 번역 공부를 하지 않고도

비교적 수월하게 번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어학연수 시절 남들 다 보는

HSK(한어수평고시) 자격증을 위해 했던 작문 연습도 번역에 도움이 됐다.

작문 연습도, 드라마나 영화 습작도 결코 번역을 위해 했던 노력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번역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우연한 연습이었다.


사실 남의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일단 장점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면 훨씬 오래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여러 장르의 다양한 책을 읽고 번역하다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말 갖가지 지식과 누군가의

소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실제로 나는 10년이 넘게 번역을 하며 자기계발서,

소설, 에세이 뿐만 아니라 경제서, 철학서, 애완동물 관련서,

심리학서, 미술서, 자서전 등 별별 장르의 책들을

다 번역해봤다. 그 책들을 번역할 때마다

'이 작품 속 지식과 경험들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뭐든 돌아서면 잘 잊어버리는 타입이라

머릿속에 많은 데이터가 남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작가들의

생각과 관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번역한 책의 작가 중에는 중국에서 손에 꼽는

소설가도 있고, 기업인도 있었으며, 현대 철학자도 있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번역하다 보면 그들이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때로는 마치 내가 그 글을 쓰고 있다는 착각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작가의 생각이나 관점이 내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내가 썼다면

나오지 않았을 글인데도 내 생각처럼, 내 관점처럼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 작가의 생각, 관점과 교류하고

고민하게 된다. 돈을 받고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번역하는 이 책, 이 작품은 내 책, 내 작품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나는 결코 이 책,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옮긴 책이라고 해도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나는 분명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기획안을 쓰고, 출판사를 통해 번역을 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출판사가 제목을 바꾸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수 없다.

나는 분명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지만 때로는 목차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거나 목차의 제목이 바뀌는 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기가 어렵다. 물론 책의 본문 내용이 바뀐다든지

훼손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주장하거나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쓴 작가가 아니기에 책의 전체에 대한

권리나 영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간혹 책 제목이 작품의 의도와 동떨어지게 바뀌거나

표지 디자인이 책의 의미를 살려주지 못할 때

나는 책을 번역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물론 출판사 편집부나 표지 디자이너라고 생각이

다른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화나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어휴, 차라리 내가 직접 글을 써야되는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적어도 온전한 내 책, 내 작품이라면 더 논의하고

더 싸워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시대가 좋아져 요즘은 꼭 등단을 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과감한 실천력, 꾸준히 지속하는 끈기만

있다면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글은 10만 명이나

100만 명이 읽을 수도 있고 10명이나 1명이 읽을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와 내 생각과 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신나고

흥미로운 일이다. 인간은 본래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하며

사는 동물이 아니던가. 특히 이런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글쓰기가 좋은 것은 한정적인 소재나 주제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쓰고 싶으면 소설을,

에세이를 쓰고 싶으면 에세이를, 시를 쓰고 싶으면 시를

써도 되며 오늘은 동물 이야기를, 내일은 음식 이야기를 써도 된다.

'오늘의 나'에게 좀 더 충실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내 이야기는 뛰어난 석학이나 상상력 풍부한 소설가,

지식이 많은 전문가의 것에 비해 투박하고 보잘 것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꾸미거나 속이지 않은 내 이야기란 점은 확실하다.

오늘의 내 기분, 내 생각, 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이야기를 쓸 이유는 충분하다.

얼굴도 모르는 어느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며 확장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듯 내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면 '내일의 나'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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