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심 대마왕, 내 돈으로 어학연수 가다

by 달빛그림자

나는 혼자 중국어를 공부하거나 한국에서 학원을 다닐 경우

몇 달 지나지 않아 중국어를 포기하게 될 것이란 판단을 내렸고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중국으로 직접 가서 중국어 공부를 하자!'

의지가 약한 편인 나는 온통 중국 사람들로 둘러싸인 중국에 가면 어쩔 수 없이라도

중국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당시 나는 28살로 다른 나라로 떠나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였다.

집에서도 얼른 시집을 가야지 어딜 가냐고 타박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하나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게는 언어 즉, 중국어도 하나의 기술로 여겨졌다.

기술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인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사람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을 잘 다룬다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혼자 중국어 강의를 들은지 한 달만에 나는 중국 어학연수를 결정했다.

이런 결심을 집에 이야기했더니 부모님은 어리둥절 그 자체셨다.

회사 잘 다니며 자기계발 차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뜬금 없이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겠다니 당황스러우신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며 모아놓은 돈으로 경제적 도움 하나 받지 않고

딱 1년만 중국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여장부 스타일이신 어머니는 니 돈으로 가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금방이라도 시집을 갈 줄 아셨던 아버지는 반대가 심하셨다.

그렇게 반대가 계속 되던 어느 날, 귀가 습자지처럼 얇디 얇은 아버지께서 어디선가

중국어를 배워두면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오시더니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출국을 허락해주셨다.


반은 농담이지만 내 돈으로 가겠다는 말이 두 분의 마음을 움직인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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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마치 오랫동안 유학을 기다리고 준비해온 사람처럼 믿을 만한 유학원을 찾고

어학연수를 가고 싶은 대학을 정했다. 또한 중급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하루에 2시간씩 수업을 하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겨우 두 달 배운 실력으로 중국에 가면 1년 안에 제대로 중국어를 배울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낮에는 착실히 회사를 다니고 저녁에는 중국어를 배우는 빡센 생활이 시작됐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행여나 중국어를 배운다고 말하면 회사 동료들이 웬 생뚱맞은 중국어냐고

물을까봐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는 나름 치밀한(?) 거짓말까지 했다.

어학연수 두 달 전에는 회사를 그만 둘 요량이었기에 괜히 더 발이 저렸던 것이다.


당시 내가 모은 돈은 1,400만 원 정도였는데 훗날 그 돈은 모두 유학원 등록비와

어학연수 1년 동안의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여행경비로 쓰였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소심하기로는 세상 소심한 내가 단숨에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준비 과정을 착착 진행한 것은 지금 돌아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먼저 손을 들고 발표를 한 적이 없을 뿐더러

누구 앞에 나서서 장기자랑을 하거나 먼저 출발하는 버스를 세워달라고 달려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못해 내려야 될 지하철 역을 지나칠 정도였으니

소심 만렙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런 내가 불현듯, 갑자기, 불쑥, 별안간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떠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중국어가 배우가 싶다.'라는 열망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소심 대마왕의 열정 엔진에 시동을 건 것이다.


나는 지금도 꼭 언어가 아니라 해도, 무엇이든 배우려면 그것을 열렬히 좋아해야 한다고 믿는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취직을 하기 위해, 승진을 하기 위해 하는 배움은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특히 외국어를 배우려면 그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 생활, 사람

모든 것에 관심과 애정을 품고 있어야 한다.

홍콩영화에서 시작된 중국어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중국 문화와 역사, 영화, 노래, 사람들로

이어졌고, 이는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공부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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