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저 하늘에 떠다니는 '연'을 뭐라고 하죠?

by 달빛그림자

나는 1년 동안의 어학연수를 위해 나름 사전 준비를 열심히 했다.

특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에 가면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느릴 것 같아

한국에서 중급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두 시간씩 수업하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한 시간은 한국인 선생님이, 다른 한 시간은 중국인 선생님이 강의하는 학원이었는데

처음에는 의욕이 넘쳐 무조건 열심히 했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따라하고, 열심히 쓰고,

열심히 외웠다. 무엇보다 단어를 외우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연습장을 사서 각 페이지가

새카맣게 되도록 외우고 또 외웠다. 한 단어를 수십 번씩 반복해서 쓰고 외우는 식으로

어휘력을 늘려 갔다. 어학연수를 가겠다는 단기 목표가 있어서인지 공부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학원을 다니며 중급반까지 마스터하고 베이징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사실 유학원을 통해 베이징에 있는 대학을 선택할 때 편의시설도 좋고, 어학 커리큘럼도 좋은 학교가

많이 있었지만 그런 곳은 일부러 고르지 않았다. 수많은 한국 학생을 만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멘탈이 약한 사람이 한국 사람을 보면 한국어가 하고 싶을 테고 그럼 중국어를

배우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나는 한국 학생이 많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접할 수 있는

북경 전영학원(북경 영화대학)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2003년 8월, 나는 난생 처음으로 베이징 셔우두 공항에 발을 딛었다.

당시 같은 유학원에 등록했던 사람들이 여럿이었는데 우리를 데리러 유학원에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유학원의 조선족 직원은 우리를 각자의 학교에 데려다 주고

은행 계좌 계설, 기숙사 방 배정, 약간의 생필품 쇼핑도 도와줬다.

학교를 대강 둘러본 뒤 기숙사에 들렀는데 그때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유학원 직원이 기숙사 직원들에게 방을 배정해달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 서있던 내 귀에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뭐라고 쏼라쏼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름 6개월 학원을 다니며 중급반을

마치고 갔는데 어떻게 간단한 몇 마디 중국어가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제야 중국어 학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배려해 아주 느리게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소심 대마왕이 다시 깨어났다.

2인 1실에 배정 받고, 아직 룸메이트가 도착하지 않은 기숙사 방에 입성한 나는

그 뒤로 이틀 동안 방 밖을 나서지 못했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려면 일주일 정도

남아 있었는데 분명 학교 식당이 어디인지 알면서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행여 음식을 주문하다 상대방의 중국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맙소사, 나는 그렇게 이틀 동안 쫄쫄 굶고 있다 배고픔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 되어서야

기숙사 앞 서점에 갈 수 있었다. 유학원 직원이 거기에서 빵이나 과자, 음료를 판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간신히 빵 하나에 음료 하나, 괜히 고른 책 하나를

카운터에 올려 놓았고, 계산기에 찍힌 숫자만 보고 얼른 지폐를 내밀었다.

그렇게 산 빵과 음료가 베이징에서의 첫 끼였다. 말을 못 알아 들을까봐 밥을 굶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그 다음 날에 일본인 룸메이트가 도착했고, 나는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됐다.

못하는 중국어지만 그래도 둘이 모이니 학생 식당에 갈 용기가 났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학교 선생님을 통해 푸다오 라오스라고 부르는 과외 선생님을 구할 수 있었다.

과외 선생님이라고 해도 보통 용돈벌이를 하는 대학생들이었는데 내 푸다오 라오스는

감독과의 대학원생으로 기자 출신이었다. 그의 단점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약속 시간을 늘

어긴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보다 큰 장점이 있었다. 바로 한 번 오면 약속한 두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내가 궁금한 걸 다 물어볼 때까지 계속 있어준다는 것이었다.

과외가 시급제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값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줬으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이제 막 중국에 살게 된 나는 호기심 폭발이었고, 세상 별별 게 다 궁금했다.

한국에서 책으로만 배웠다면 궁금해하지 않았을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호기심을 느꼈다.

특히 내가 궁금해 한 것은 하늘에 떠다니는 '연'이었다!

학교 근처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근처를 지날 때면 항상 하늘 높이 떠있는 연을 볼 수 있었다.

평소 중국 사람들은 공원에 나와 광장무 같은 춤을 추거나 연을 날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 하늘에 떠다니는 '연'을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 했다.


당시 나는 두꺼운 중한사전 하나와 얇은 한중사전 하나만 가지고 중국에 갔었는데

한중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연'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남들은 다 전자사전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행여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전자사전을 구입하지 않았었다. 스치듯 한 번 보고 말면 내 단어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일이 사전을 찾고 형광펜을 그으며 한 번 찾은 단어를 표시해두는 게 내 공부방식이었다.


내내 하늘에 떠다니는 '연'을 궁금해하던 나는 어느 날 푸다오 라오스와 함께 외출할 일이 있었고

학교 근처 공원을 지나가게 됐다. 드디어 나는 '연'을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저기, 저, 저, 저 하늘에 왔다갔다 하는 걸 뭐라고 해요?"

내가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물어보자 푸다오 라오스는 연신 눈을 꿈벅거리며 뭘 말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설마 하늘에 나는 '연'을 모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며 바디랭귀지를 시전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물어본 뒤에야 푸다오 라오스는 이마를 치며 답을 해줬다.

"펑정(风筝),저건 펑정이잖아."


너무 간단하지만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찾아볼 일이 없었던 단어,

'연'이 '펑정'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작은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시절 새로운 단어,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기쁨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디딤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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