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눈치를 보는 아이였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지나칠 정도로 눈치를 봤다.
아마 그것은 나의 타고난 내성적 성향과 소심함에서
기인했으리라. 그 때문에 눈치를 보는 습성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버리기가 어렵다.
'눈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1.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2.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
라고 되어 있다.
돌아보면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익숙했던 것 같다.
무슨 상황이 있을 때마다 상대의 기분이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 일쑤였고,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반대로 나쁜 일이
있을 때면 기분이 눈에 띄게 밖으로 드러나는 편이었다.
심지어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시면 나 때문에 싸운다고
자책하며 울기도 했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틀릴까봐
직접 주문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에 없는
모임에 끌려 가거나 부모님이 권하는 선자리에 억지로 나가기도 했다.
이 모두가 지나치게 눈치를 봤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뜻인데
살면서 그만큼 남의 시선을 중시하며 살았던 셈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까,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남들은 이렇게 하지 않을까
온갖 남의 시선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했다.
나의 생각,나의 기분, 나의 마음 따위는 남의 생각, 남의 기분, 남의 마음에
떠밀려 완전히 뒤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으며 이런 내 습성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그렇게 해서 뭔가가 나아지거나 이득이 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일 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눈치를 보는 일은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해를 미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폐를 끼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게 능력 밖의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해보자.
괜히 눈치를 보느라 상대의 부탁을 받아들인 경우 그 순간부터 내게는
스트레스가 시작되게 된다. 내가 할 일을 제쳐두고 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일이라 과정도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럼 결국 부탁을 했던 사람도 기대에 못 미친 작업물을 받아들여야 하며,
왜 진작 거절하지 않았느냐고 당신을 원망하게 된다.
이는 눈치를 본 나도, 눈치를 준 상대도 원하지 않는 결과이리라.
이렇게 눈치 보고 살아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할 뿐더러
무엇보다 나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 눈밑 주름과 코옆 팔자주름도 늘지만
경험치와 깨달음도 늘게 마련이다.
이런 경험치와 깨달음은 세월이 준 보석 같은 선물이다.
덕분에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는 부탁에는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됐으며,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는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나 때문이 아닌 싸움에는
당사자들끼리 직접 해결하라고 권하게 됐으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도
있게 됐다.
이를 테면 나는 비혼주의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서 또 이야기할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연애도, 결혼도 도통 관심이 없지만
27살 때부터 선을 꽤 많이 봤었다.
집에서는 결혼을 하라고 하는데 연애도 안 하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효도하는 셈치고
나가라는 선자리는 다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이곳저곳
선자리에 나가봤자 나가는 나도, 나오는 누군가도,
나가라고 하는 부모님도 아무런 득이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더 이상 선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느라 맘에도 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셈이다. 그렇게 선언하기까지 나는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망설였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니
삶이 훨씬 편해졌다. 물론 부모님께 작은 실망감을 안겨 드렸지만
정확한 내 마음을 밝히고 나니 서로에게 편한 일이 됐다.
살다 보면 누구나 남을 서운하거나 실망하게 만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차라리 먼저 약간의 서운함과 실망감을
안겨주는 편이 낫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관계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것일 뿐 상대는 차라리 내가 거절할 일은 빨리
거절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남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나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생각이, 내 기분이, 내 마음이 편하고 좋아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무난해질 수 있다.
눈치를 보며 살아봤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며
스스로 편하지도 않다. 굳이 봐야 한다면
나의 기분은 어떤지, 나의 마음은 어떤지
나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게 백만 배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