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책에 보면 바울이란 사도는 하나님께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정확히 그 가시가 무엇인지 언급된 적은 없지만
훗날 학자들은 희귀한 피부병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가시가 있게 마련이다.
어제 나는 새벽에 배가 아파 잠에서 일찍 깼는데 불과 1시간 사이에
화장실을 네 번이나 들락거렸다. 그 뒤 교회에 가려고 밖을 나섰다
중간에 한 번 더 화장실에 가야 했다.
내게도 몸에 가시가 몇 개 있는데
평생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배앓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배앓이보다는
남들과 다른 목소리가 가시라고생각했다.
여자치고는 낮고 굵은 목소리를 가진 편이었기 때문이다.
요즘만 해도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들이 적지 않은데
내가 어렸을 때는 낮고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애가 드물었다.
그 때문에 나는 눈에 띄는 어떤 짓도 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일쑤였고, 놀림을 당하는 일도 잦았다.
심지어 내 목소리를 흉내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남과는 다른 내 목소리가 너무 싫었었다.
목소리에 대한 컴플렉스는 중학교 때 극에 달해
음악 시간에 여학생들만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입만 뻐끔거렸으며 놀림을 받을까봐
일부러 더 말을 하지 않게 됐다.
나중에 돈을 벌면 성대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번은 학기 초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번호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셨다. 워낙에 내성적인데다
목소리가 신경 쓰였던 나는 잔뜩 긴장해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소개를 마친 뒤 선생님께서
"얘, 너는 목소리가 왜 그러니?"라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선생님, 저는 원래 목소리가 이런데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콧방귀를 뀌시며 "요즘 애들은 개나 소나 자기들이
저런 목소리 내면 다 스타인 줄 알아."라고 하셨다.
당시 어린 나는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다.
'선생님이라면 학생의 컴플렉스를 보듬어주고 자신감을 줘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마흔 살이 넘도록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와서도
내 목소리에 놀라거나 놀리는 아이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쯤 생각을 바꿔 먹기로 결심했다.
그건 아주 사소한 계기 덕분이었다. 아마 어린 소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친구 중에 예쁘장하게 생겨 인기가 많은 애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학교에서 인기 있는 오빠 이야기를 꺼내며
그 오빠가 날 알더라고 얘기했다.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는 나였기에 그 오빠가
대체 어떻게 나를 아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친구가 "내가 네 이야기하니까 그 오빠가
'그 목소리 이상한 애?'라고 하던데."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외모도, 성격도, 행동도 지극히 평범한데다
교실에서도 있으나 없으나 표가 안 나는 학생이었는데
그 오빠가 오로지 목소리 때문에 날 기억한다는 말에
'목소리야말로 나의 가장 큰 개성이었구나. 사람들이 내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내 목소리만큼은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나는 '그래,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꿔야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목소리를 바꿀 수 없다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 목소리를 나만의 개성이라고 여기자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음 먹었다고 해서 당장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몸의 가시가 아니라 하나의 특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친구들의 놀림에도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됐다.
마음이 편해진 덕인지 나이를 먹은 뒤에는
오히려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렇게 살면서 마음 먹기에 따라 몸에 있긴 하지만
뭉뚝해져 아프지 않게 된 가시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가시는 평생을 함께 해도 적응이 잘 안 되고
무시로 쿡쿡 찌르는 가시가 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나와 함께 해온 배앓이었다.
나는 아기 때부터 위장이 튼튼하지 못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난 지 몇 개월 안 됐을 때 설사와 구토를
반복해 아프리카 난민(?)처럼 바짝 말랐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양방병원 여러 곳에 가봤지만
특별한 병이나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으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기가 물 한 모금만 먹어도 싸고 토해대니
나중에는 울 힘조차 없을 만큼 축 늘어졌었단다.
그때 동네 아시는 분의 소개로 한의원에서 약을 두 재
지어 먹었는데 효과를 보고 뜻밖의 건장한(?) 아이로 거듭났다.
하지만 체격이 건장해진 것과는 별도로 배앓이는 평생
나와 함께 했다. 나는 툭하면 배가 아픈 탓에
"배 아파~"란 말을 정말 늘상 입에 달고 살았다.
오죽하면 조카가 어렸을 때 내 생일 선물이라며
이모에게 부탁해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줬는데
거기에 '고모 배 아프지 마.'란 글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나이가 먹으면 좀 나아질까 했던 배앓이는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심해지고 있다.
아마도 신체대사 능력이 저하되는 탓이리라.
아무튼 이렇게 자주 배가 아프다보니 나는
대학 시절에도 주로 집 근처에서만 친구들을 만났다.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당시만 해도 밖에서
큰 일(?)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을 갈 때도 되도록이면 패키지 여행은 피했다.
단체로 움직이는데 나만 배가 아프다고 하면 폐를 끼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차를 타고 막히는 도로를 달리거나
지방에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탈 때였다.
집에서는 안 그렇다가도 차만 타면 어찌나 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지 배가 아프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특히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등줄기가 싸늘해질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앞이 노래졌다.
그것이 바로 배가 아파온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정말 극단적으로 말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런 일이 내게는 유난히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차를 타거나 멀리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행여나 생길 문제를 막기 위해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해외 여행을 가기 전에는 일주일 전부터 컨디션 관리를 하며
최대한 배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썼다.
심지어 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6개월 정도 앓은 적이 있는데
이게 정말 사람을 위축되고 불안하게 만드는 병이었다.
안 그래도 배가 자주 아픈데 과민성 대장증후군까지 앓고나니
정말 한동안은 사람을 만나러 밖에 나가기가 무섭고 괴로웠다.
내가 사람들이 많은 회사 대신 집에서 번역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무의식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배가 자주 아프다보니 나는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일이 적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도, 해외여행을 간다며 탄 공항철도 안에서도,
멋진 풍경이 펼쳐진 여행지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올라간 산에서도
즐거움과 설레임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느껴본 적이 없다.
'배가 아프면 어쩌나?'란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늘 먼저 등장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목소리란 몸의 가시는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뭉뚝해질 수 있었지만
배앓이란 몸의 가시는 그런 성질의 가시가 아니다.
그야말로 내게는 좋든 싫든 평생 함께 해야 할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렇게 내 몸에 있는 줄 알면서도 뽑기 어렵고, 그렇다고
뭉뚝해지지도 않는 가시가 있다. 심지어 더 뾰족해져 더 자주
나를 찌르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가시에 대처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다.
'그래, 내게는 이런 가시가 있다.'란 사실을 인정하고
되도록이면 덜 찔리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이건 내 가시가 아니라든지, 어떻게든 뽑아버리겠다든지,
절대 찔리지 않겠다든지 하면 나만 더 괴로워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덜 신경 쓰고, 덜 괴로운 편을 선택해야 한다.
그 가시도 내 몸에 있는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에게도 이런 몸의 가시가 있는가?
물론 몸이 아니라 정신의 가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그 가시를 인정하고 덜 찔리게 조심하자.
어쩌면 그 가시 덕분에 당신은 좀 더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