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날 때

by 달빛그림자

살다 보면 우리는 화나는 일을 종종 만나게 된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란 말처럼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분노 즉, 화처럼 파괴력이 큰 감정은 거의 없다.

특히 사람들은 화나는 일을 오래 기억하는 편인데

이는 편도체 때문이라고 한다.


대뇌 안에 자리잡고 있는 편도체는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경험을 했을 때는

바로 주목해 이 기억을 장기 기억장소에 보관하는 반면

긍정적인 경험을 했을 때는 12초 이상 주목한 뒤에야

기억장소에 보관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은 나쁜 일을 좋은 일보다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화났던 일은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가 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하게

되는 것 역시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대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탓에 대뇌피질에서 이를 인식하고

억제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소한 지식은 자기계발서나 심리학서 같은 책을

많이 번역하다 보니 얻게 된 뜻밖의 부산물이다.

사실 번역하다 보면 알게 되는 지식이 이것뿐만은 아니다.

뛰어난 학자나 전문가들이 책속에 풀어놓은 지식과 지혜를

모두 흡수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 학술지에 실릴

논문 한 편이나 베스트셀러를 쓰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타입이라

그런 운수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는가?

'화라는 감정은 편도체에서 만들어지는 거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대뇌피질에서 인지하고 내 화를 억제해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앞서 감정과 편도체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화는 그저 화일 뿐이다.


화가 날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쳐 자신이 화가 났음을

알리기도 하고, 할 말은 많지만 입술을 꾹 닫고

화를 억누르기도 한다.

화나는 일이 많아지면 몸에 익숙해져 '이건 화낼 만한 일이 아니야.'라며

화나는 것 자체를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도 좋은 해결법은 아니다.


이를 테면 화가 난다고 즉각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상대에게 쏟아낼 경우 우리는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조금만 지나면 후회할 말들을 마구 퍼붓기 쉽다.

화가 나면 사람은 흥분 상태에 빠져 감정이 과장되기

마련이라 A만 이야기할 것을 B, C, D… 막 늘어놓게 된다.

특히 흔한 레퍼토리가 "네가 예전에 나한테…"라든지

"네가 그러고도 잘되면…" 같은 것들로 과거로 발목을 잡거나

미래에 대해 악담을 해댄다. 문제는 이렇게 쏟아낸들 듣는 상대가

반성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이 후련한 것도 아니란 사실이다.

심지어 사태가 악화될 경우 서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뉴스나

신문 사회면에 날 만한 참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화를 꾹 참는 것 역시 능사는 아니다.

몸 밖으로 발산돼야 할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면

감정은 몸 안을 공격하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화병에 걸린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을 자꾸 참다보면

몸 안에 쌓여 각종 질병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화가 나는데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고 있으면

나만 골병이 들뿐 내가 화났다는 것 자체를 분노를 유발한

상대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 누구도 모를 수 있다.

상대는 알지도 못하는데 나 혼자 화났다며 그 일을 계속

복기하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화란 꼭 어떤 상대 때문에 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이 기대만큼 일을 잘 하지 못해서,

예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잔뜩 기대하며 시켰던

배달음식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기타등등의 이유로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속으로 꽁해 있는 게

해결책은 아니다.


화나는 일이 많아 아예 '이건 그리 화낼 일이 아니야.'라고

화나는 일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상황에 따라 그에 걸맞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를 부정하고 회피하려 한다면

결국 남는 건 무기력증과 우울증뿐이다.

회피한다고 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을 뿐이기에

제때 풀리지 않은 화는 사람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화가 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본 어떤 책에서는 화가 났다란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어볼 것을 권했다.

즉각적으로 화를 내거나 화를 참거나 화나는 일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원시시대의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생존본능이기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현대의 사람들은 대처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나 역시 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에게 과도한 상처를 주고

나를 해치며 오랫동안 후유증을 남길 대처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으며 속도 편치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본 책의 작가는 화가 나면 자신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은 뒤

건설적인 일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딱히 건설적인 사람은 아니라

나만의 화를 푸는 법을 미리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성격이나 성향, 일하는 방식 등이 다 제각각이듯

화를 푸는 방식 역시 자신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텅 빈 곳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불을 덮고 푹 잔 뒤 잊어버릴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열을 낼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에 따질 것은

명확히 따질 수도 있다. 그게 화나는 일을 가슴에 쌓아두지 않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다.


나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지금 화를 푸는 중이다.

사실 어제 화나는 일이 몇 개나 겹쳐서 왔더란다.

화가 날 때 예전에는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했는데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쏟아내고 스스로도 깜짝 놀라는

나를 발견한 뒤로 가능하면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신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일기에 쓰든 이렇게 글로 남기든

기록을 하는 것으로써 몸 안에 있는 화를 끄집어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풀리지 않는 화가 있다면 이성적으로

생각을 정리해 화를 유발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좀스러워 보일까봐 걱정이라고?

조금 좀스러워 보이면 어떠랴.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

나의 솔직한 기분을 표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이득 아니겠는가. 또한 시간이 좀 흐른 뒤에

화가 났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의, 무슨 방법이 됐든

그것이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화가 날 때 자신만의 화를 푸는 방법으로 해소를 한 뒤에

다음으로 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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