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집 앞 도로 밑에 무슨 선을 깐다고 하더니
오늘 9시간이나 정전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오전 9시가 조금 넘자 정말 모든 전기가 끊겨
조명도, 컴퓨터도, 선풍기도, 냉장고도 다 꺼져버렸다.
일순간 집안의 공기가 얼어붙고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중한 번역가라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그 흔한 노트북도 없기 때문에 하던 모든 일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직장에 나갔는데
하루 종일 정전이 된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늘 돌아가던 전기가 멈추고 나니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 어느 하나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숨쉬는 공기도, 머리를 뜨겁게 하는 햇살도,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내리는 물도,
손쉽게 쓰는 가전제품도, 가끔 눈길을 주는 책도
누군가의 공로와 배려가 있었기에 의식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본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지난날 이 지구에 존재했던 누군가가 희생하고
노력했기에 만들어진 것들을 우리는 그들이
그대로 이 땅에 두고 갔기에 아무 조건 없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가진 게 없다며
푸념하거나 남들만 가진 게 많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전혀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쓰면서 말이다.
그나마 핸드폰은 미리 충전을 해놨기에
이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떤 것들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거나
기능이 멈춰버릴 때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
아마 몇 시간 뒤 다시 방의 불이 켜지고,
컴퓨터 화면이 나타나고, 선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하게 전기가 주는 편리함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가끔
내가 당연히 여기는 것의 존재감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다시 전기가 들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