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과 불평

by 달빛그림자

우리는 살다 보면 짜증이나 불평이 많은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우리 엄마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으며, 회사의 김대리일 수도 있고,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짜증이나 불평이 많은 사람과 마주하게 될 때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실제로 툭하면 짜증을 내고 불평하는 사람을 보면

그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든지, 아예 그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짜증과 불평에 스트레스 수치가 극에 달한 사람은

제발 좀 그만하라고 적극적으로 상대를 만류하기도 한다.


누군가 부정적인 감정을 수시로 드러낼 때 기꺼이 공감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상대로 인해 멀쩡하던

내 기분까지 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짜증과 불평은 서로 다른 종류의 행동 혹은 감정이다.

나는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 해도

혹시 뜻을 헷갈릴까 싶어 그때그때 사전을 찾아보는 편인데

'짜증'이란 본래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 또는 그런 성미'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불평'이란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 번째가 '마음에 들거나 차지 않아 못마땅하게 여김'을

뜻하며 두 번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한 생각을

말하다'라는 뜻을 말한다.

우리는 대개 두 번째 의미로 '불평'을 이해하고 사용한다.


보통 '짜증'은 하던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반복적인

잔소리를 듣게 될 때, 남들은 놀고 있는데 나 혼자 일을

하고 있을 때 확 치솟아 오르게 마련이다.

이런 짜증은 즉각적이고 일시적이며 소모적인 반응일 때가 많다.

굳이 짜증의 긍정적인 효과를 찾자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지 않고 밖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과 상대의

잔소리를 잠시라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반면 '불평'은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나 혼자 많은 일을 떠맡게 될 때,

무언가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실생활에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할 때 터져 나오게 된다.

이런 불평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여온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한 번 터지면 계속 늘어놓게 된다.

하지만 짜증과 달리 불평은 상당히 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단 '짜증'에 대해 실제 예를 들어보자면 바로 이런 식이다.

"XX야, 핸드폰 그만하고 숙제해. 숙제 좀 하라고!"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실 경우 아이는 건성으로 몇 번

"알았어요."라고 말하다 나중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해요!"라며 버럭 짜증을 내기 십상이다.

이런 짜증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더러 문제를 풀어낼 촉매제가 되거나 해결법이 되지 못한다.


그에 비해 '불평'은 듣는 상대를 짜증나게 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귀기울이면 의외로 쓸모가 있을 때도 많다.

이를 테면 인류가 지금처럼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 역시

많은 사람의 불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어딘가 먼 목적지를 갈 때 걷거나 말과 마차를

타는 게 불만인 사람이 있었다고 해보자.

그는 수시로 불평을 터뜨렸을 것이다.

"거기까지 걸어가려면 6시간이나 걸리고, 말을 타고 가도

2시간은 걸리는데 그럼 도대체 내 귀한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는 거야? 왜 세상에 말보다 빠른 교통수단은 없는 거지?"

분명 이런 불편함에 대한 불평이 모여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을 테고 실제로 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의 개발로 이어졌으리라. 이처럼 불평은

새로운 개발이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삶에

애정이 있다.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불평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고

만사를 회피하는 사람이 뭔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평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는 자신의 삶이나

주변의 세상에 대해 애정이 바닥나고 관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불평이 많은 사람은 내가 처한 현실에

부당함을 느끼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할 줄 안다.

세상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옳은 것이든 아니든

그 개인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애정하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문제는 불평이 불평으로 그칠 때이다.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다." 라든지

"이게 이렇게 불편한데 왜 그냥 놔두는 거야?"라고

불평만 할 뿐 아무런 개선의 의지가 없고 내가 아닌

남이 바뀌고 남이 어떻게 해주기만을 바랄 경우

불평은 짜증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감정과 행동이 되고 만다.

가장 좋은 불평은 개선이나 발전의 대책이 있을 경우다.

예를 들어 "이 동네는 비탈도 많은데 겨울마다

눈은 왜 이리 많이 와?"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비탈에 쌓이는 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는 생산적인 불평이다.

반면 웬 놈의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이냐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불평만 할 뿐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 한다면 이는 소모적인 짜증에 불과하다.

하다 못해 누군가에게 영감이라도 줄 수 있어야

유용한 불평이라고 칭할 수 있다. "눈이 오지게 오는데

길에 뭐라도 깔면 얼마나 좋아?"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의 한 마디로 인해 누군가 그 길에 열선을 깔 방법을

연구할 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당신은 프로 불평러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불평인가 세상에 대한 불평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불평이든 세상의 무엇에 대한

불평이든 당신은 해결책이나 대안을 갖고 있는가?

혹은 누군가에게 그 불평으로 인해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무작정 불평하기보다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불평이 사소하면 사소한 대로 불평이 크면 큰 대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분명 언젠가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결국 삶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한 사람이 아니라 불편을 느끼고

불평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우리 이제부터라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프로페셔널한 불평러가 되보면 어떨까?

또한 주변에 불평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외면하기보다

그 불평에 귀를 기울여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보면 어떨까?


짜증내는 사람이 되기보다 유용한 불평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나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훨씬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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