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기 위한 습관

삶의 습관

by 산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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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기 위한 습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안의 창문들을 여는 것이다. 아무리 추운 한겨울이어도 먼저 창문을 연다.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일종의 습관이다.

잠들기 전 모든 창문을 굳게 잠그는 것은 밤새 잠든 식구들의 안전을 온전히 지키며 숙면에 빠져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외부 상황에 대처할 힘이 없을 때를 대비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나는 저녁 9시 즈음에 아이들과 함께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야만 그나마 맑은 정신으로 간신히 두세 시간 정도의 내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거실의 블라인드를 올리고 큰 창문을 열고 그 맞은편 끝에 있는 중문을 지나 전실의 큰 창문을 열어 서로 바람이 통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부엌으로 가서 역시 중문을 지나 선반 위에 있는 창문을 열어 거실 창문과 이중 맞바람이 불도록 한다. 밤새 머물러 묵은 집안의 공기와 바깥공기가 서로 섞이며 순환하게 한다. 그리고 서재방의 랩탑과 다이어리를 들고 거실 창문 옆의 테이블에 앉는다. 따뜻한 물 한잔과 함께.

그 자리에서 식구들이 일어나는 7시 반까지 꼬박 앉아서 내 시간을 갖는다. 9월 중순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낮에는 한여름 못지않게 덥다. 하지만 이른 아침 시간의 공기는 무척이나 시원하고 상쾌하다. 창가에 앉은 나를 사이에 두고 사방으로 살랑거리는 맞바람의 냄새는 나의 아침의 냄새이다. 그 냄새가 항상 좋지는 않다. 하지만 그 냄새는 계절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작은 힌트이다.


습관의 시작은 인생의 쓴 맛, 아니 냄새

아침이면 창문을 바로 여는 습관의 시작은 유학을 가며 처음 혼자 살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던 날, 학교 캠퍼스에 붙어있는 아파트를 가자마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한국에서 미리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나보다 두 살 많았던 언니와 함께 첫 학기는 살기로 했었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학교 내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수소문 끝에 구해 놓은 집이었다. 먼저 살고 있었던 언니는 작은 방에서 살고, 나는 거실에서 살기로 했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간단하게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 커튼은 방과 부엌과 화장실을 오가는 경우에 서로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였다. 그저 시각적으로만 사생활을 보장하는. 거실은 방처럼 아늑하지는 않아 약간은 어수선할 수 있지만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난 그게 좋았다. 처음에는 몰랐다. 공간을 냄새로부터 지킬 수 있는 문이 없는 부엌과 결국은 하나나 마찬가지인 거실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사회생활도 3년이나 하고 떠난 박사 유학이었지만 타지 생활을 온전히 혼자 살면서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도착한 다음날 즈음 도와주기로 한 한인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매트리스며 책상이며 필요한 살림들을 구입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도착한 집, 내 공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간단히 룸메이트 언니와 인사하고 안내받아 커튼을 열고 내 공간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캐리어 안에 챙겨간 얇은 이불을 카펫 바닥에 깔고 덮고, 두꺼운 외투를 베개 삼아 누웠다. 그리고 평생 식구들과 함께 살다가 처음 떨어져 살게 된 첫날. 밤새 그렇게 눈물이 났다. 무서웠는지 불안했는지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그리고 해가 뜰 무렵 간신히 잠이 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살았던 이 학교 앞 아파트는 3층짜리로 층수가 낮고 옆으로 길고 한번 꺾이는 기역자 구조였다. 양끝과 꺾이는 부분에 입구가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들어오든 계단을 올라와 2층 통로를 한참 지나 중간쯤 있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처음 미국에서 당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는 집 문의 잠금장치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우리 집은 다른 집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지만 번호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안에서 이중 삼중으로 장치가 있었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누군가가 밖에서 세게 문을 밀거나 당긴다면 열릴 수도 있을 것 같이 잠금장치가 시원찮다. 안에서도 있으나 마나 한 걸이가 더 있기는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리 지금부터 20년 가까운 옛날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아파트는 주로 학부생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집을 알아보면서 이 사실은 몰랐었다. 밤이면 밤마다 파티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실수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려고 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난 가슴이 두근거려 너무나도 불안했다.


전기 쿠커 속 사골뼈다귀

도착한 첫날, 그렇게 울다가 불안해하다가 잠이 든 지 얼마쯤 지났을까, 한 순간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잔뜩 탄 베이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 냄새 때문에. 내 방(거실)은 냄새에 무방비 공간이었다. 요리에 서툴렀는데 항상 요리를 해 먹던 룸메이트는 그 날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었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좋아해 매일 기름에 굽고 튀기고 알 수 없는 음식을 만들었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면서부터 룸메의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 당연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룸메에게 뭘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 요리하지 마세요 도 아닌 것 같고, 냄새 좀 내 방(거실)에 안 나게 해 주세요 도 아닌 것 같고, 마땅히 할 수 있는 얘기를 찾기 어려웠다. 제대로 환기도 안되고 냄새에 온전히 열려있는 나의 공간 때문에 숨을 좀 쉬려고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고, 집에 오면 또 역시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다.

한 학기의 반쯤 지났을 즈음, 두 가지의 사건으로 나는 결국 집을 옮겼다. 당시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갑자기 흰머리가 눈에 띄게 많이 나기도 하고 안 아팠던 치아까지 아프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주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과제 때문에 거의 아침이 다 되어서 잠이 들었던 날들 중 하루였다. 잠이 반쯤 깬 상태에서 알 수 없는, 하지만 무척 불쾌하고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와 타닥타닥 마치 캠프파이어를 할 때 나무가 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한참을 잠결에 이게 뭐지 뭐지 하면서 헤롱거리다가 순간 불이 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커튼 너머로 내 공간은 연기로 가득했고 냄새와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부엌으로 뛰어갔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룸메가 사골국이 먹고 싶어서 사골뼈를 사다가 전기 쿠커에다가 넣고 끓였단다. 내가 한참 과제하며 잠들기 전에 룸메가 부엌에서 뭔가를 했던 기억이 났다. 한참 끓이는데 냄새가 많이 나더란다. 참나. 그래서 자기 방문을 닫고 잠깐 들어갔고 안 자려고 했는데 잠이 들어버렸단다. 전기 쿠커 안은 새까맣게 타고 뼈는 무서운 형체를 하고 쿠커 바닥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뼈가 타는 냄새였던 거다. 너무 화가 나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룸메는 끝까지 나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다는 소리가 물 많이 부었는데? 불이 안 나서 다행이네! 였다. 그리고 그 뼈 타는 냄새는 우리 집뿐 아니라 아파트 전체를 채우고 남았다. 모두 다 그 냄새의 출처는 두 명의 아시아 여자가 사는 우리 집이라는 걸 알았다.

사골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뒤 저녁, 누군가가 뭐라 뭐라 소리 지르며 내가 자고 있던 거실 창문에 돌을 던졌고 내 눈앞에서 창문이 깨지고 돌덩이가 떨어졌다. 누군지 깨진 창문 밖으로 내다볼 수도 없었다. 그때까지 내 인생 중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냄새가 기억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