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방학이 되면 예전 유치원생일 때와는 달리 꽤 긴 기간 동안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며 더 많은 시간 동안 일에 소홀하게 된다. 매일 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하루에 소모하게 되는 에너지는 거의 두 세 배가 되는 것 같다. 저녁 9시면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나는 7시간을 자고 새벽에 일어난다. 새벽 4시부터 식구들이 기상하는 7시까지가 온전히 내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들 방학이 되면, 난 파김치가 되어 9시에 잠들어도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함께 깨곤 한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늦게 일어났다. 덩달아 새벽에 해야 했던 일들은 다 밀리고 밀려 마감을 넘기고 있었다.
간밤에 매일 하루하루를 너무 안이하게 보내는 건 아닌지 문득 겁이 나곤 한다. 어쩜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매번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잠시 쉬는 시간이면 너무 일을 안 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최대한 아이들과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하교 후 집에 왔을 때는 아빠나 엄마가 꼭 집에서 아이들을 반겨주며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의 학교 생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이주 중요한 일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가까운 곳이라도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우리 부부의 시간관리가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그리고 각자 조그마하게 사업을 한다. 난 사업가라기보다는 프리랜서라고 해야겠다.
사업이라는 말에 비해 우리의 통장은 텅장이다. 들어오면 바로바로 다 나가고, 대출은 줄지 않고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이 상황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에게도 더 많은 다양한 자유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점점 늙어 가는 우리의 모습에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나의, 우리의 노년을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계속해서 커가며 돈 들어갈 일이 이제부터 시작일 텐데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도 더 잘 케어해야 하고, 통장 내실도 차곡차곡 더 든든히 해야 하니 언제나 일종의 불안함에 시달리는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내 불안함의 시작은 분명히 sns일 테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 핸드폰에서 앱을 지웠다가 어느새 노트북으로 보고 있고, 그냥 다시 깔자 싶어 핸드폰으로 들여다보기를 벌써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른다.
불안해하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은 남편이 핸드폰을 안 보고 밤잠에 푹 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안 잔 듯한데 둘째가 눈도 제대로 못 뜨며 무서운 꿈을 꿨다고 침대 옆에 와 섰다. 안고 누워서 시계를 보니 3시 55분이다. 이제 5분만 지나면 손목에서 알람이 울릴 거다. 내 취침시간은 스마트워치와 핸드폰에 나오듯이 저녁 9시에서 새벽 4시까지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만 잠깐 둘째를 안고 누워있었다.
밤새 도착한 택배를 바로 정리하려 했지만 갑자기 밖이 너무 어두워서 현관문 열고 나가기가 싫었다.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봤던 맨손체조 영상이 생각이 났다. 10분 동안 거실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움직였다.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화장하고 나가는 일이 없어 머리를 며칠은 안감은 듯하다. 몸을 잠깐 움직였는데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는 기분이다.
현관 앞 택배를 정리하며 오늘 아침에 먹을 수프와 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걱정하며 아이들과 남편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욕실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몸도 움직이고 따뜻한 물에 씻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재택근무를 위해 집안 여러 군데에 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뒀다. 그중 한 군데가 거실 창문 옆 큰 책상이다. 주로 남편이 종일 그곳에 앉아 일을 하기 때문에 주로 나는 이른 아침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다. 햇빛이 잘 드는 책상가에는 화분을 놓아두었다. 깻잎화분. 아직은 잘 자라고 있는 듯 보인다.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때, 크고 작은 화분이 족히 30개는 들어왔던 것 같다. 집과 사무실에 나눠 두고 나름 정성스레 키웠지만 두 차례 보름간 해외 출장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식물들은 다 말라죽었다. 지금 집에 남은 건 홍콩 야자와 개운죽이다. 둘은 신기하게 물을 잘 안 줘도 그늘에 처박아 둬도 아주 쑥쑥 잘 크고 있다.
난 항상 맘이 불안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면, 새로운 화분을 사거나 새로운 모종을 심는다.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두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하지만 이내 바쁜 일상 중에 물 주는 것을 잊어 죽이기 일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결국 죽이더라도, 뜯어먹을 수 있는 허브와 채소들을 심기 시작했다. 바질, 로즈메리, 루꼴라, 상추 등.
지난달에는 두 가지 종류의 상추와 깻잎의 모종을 사서 집에 남아도는 화분에 심었다. 파릇파릇한 작은 잎사귀들이 잘 자라주길 바라며 창가에 두고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다 금방 자랐다. 온 식구가 고기를 싸서 먹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지만 꽤 상추와 깻잎 꼴이 그럴듯하게 컸다. 그런데 며칠이 더 지나면서 이상하게 집안에 날파리 같은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듯했다. 상추는 벌레가 생긴다는 친구 말에 일단 먹을 수 있는 상추를 다 딴 뒤 그냥 바로 물과 햇빛을 안 주기로 했다. 현관문 앞 북향인 전실의 그늘 구석에 벌레가 나오는 화분들을 내어 두었더니 정말 며칠 사이에 거름이 되어 버렸다.
화분 옆 열어 놓은 창문 너머,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부는 가을바람에 깻잎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