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밭의 파수꾼
여태 만난 길 위의 고양이들은 치열한 삶을 살아내기에 바빠 예민한 눈초리로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 경계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얼굴이나 보여준다면 다행이었다. 처음 보는 인간의 한낱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고자 고단한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고양이는 드물었다. 근처에 다른 반려동물을 기르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난 꽤 오랜 시간 동안 털 난 동물을 가까이 접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비교적 경계 없이, 인간이 다가오든 말든 잠을 청하거나 그대로 앉아있는 기숙사 고양이란 신기한 존재였다. 면접을 본 날부터 기숙사 로비에서 꾸벅꾸벅 졸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프레즐은 물론이거니와 터줏대감 치즈, 얼굴 크고 뽕알도 큰 데 소심미가 돋보이는 크림이까지. 모두 노란색 치즈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던 사람은 어디 갔는가. 그의 결연한 다짐과 마음의 단단한 자물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실 내게 처음부터 밥을 챙겨주려던 의도는 없었다. 월 단위로 많은 알바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기숙사에는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대대로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누군가 사료를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굴모를 그 사람은 넓은 쟁반에 사료를 부어주고, 키티 모양 그릇에는 깨끗한 물을 담아두었다. 풀숲에 숨겨진 그릇은 관심 있는 사람에겐 보였고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마법의 그릇이었다. 나는 그릇이 보이는 쪽이었다. 사료가 떨어진 쟁반 탓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배고픈 고양이들을 보거나, 바싹 마른 물그릇 밑바닥에 찰싹 붙은 낙엽을 떼어낸 적도 있다. 그래도 밥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여전히 내 책임은 아니지. 나는 귀여운 고양이들의 자태를 감탄하며 보기만 하면 되는 편한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픈 고양이는 조금 불쌍한걸…. 고양이가 뭘 좋아하더라? 고양이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내게도 '챠O츄르'는 언젠가 들어본 제품이었다. 당장 인터넷 쇼핑몰로 츄르를 검색했다. 10개 들이 한 봉지에 오천 오백 원이라고? 생각보단 조금 비싸서 망설여졌지만 식후 음료 한 잔을 포기하고 구매해보기로 했다.
오며 가며 보이는 고양이마다 츄르를 주다 보니 뿌듯함과 자만심이 치솟는 게 느껴졌다. 사비를 들여 츄르를 사주는 나는 어쩌면 굉장히 착한 거 아닐까!? 고양이들도 이렇게 좋아하고 있어! 그런 착각은 다음 츄르를 구매하기 위해 쇼핑몰에 들어갔을 때 깨지고 말았다. 리뷰란을 훑어보던 중 어떤 사람의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츄르가 짠 편이라 자주 먹이면 건강에 안 좋아요. 집사님들도 이걸 먹인후엔 물을 많이 급여해주세요.'
나는 고양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몰랐던 것이다. 내가 베푼 무지한 선의가 이 작은 아이들에겐 무관심보다도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니. 절대로 반복하지 않겠다 다짐한 일을 다시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 충격받은 내게 마침 중고 마켓에 고양이 캔이 올라온 것이 보였고, 그걸 구매하는 데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돌봐주던 길냥이에게 주려고 구매했으나 뺑소니로 고양이별로 떠나 판매한다는 사연까지 내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우리 고양이들은 그러면 안되는데. 비어있는 빈도가 늘어가던 사료그릇이 근래엔 채워진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왕 준다면 밥이 되는 걸 주겠어! 고양이에 대해 공부할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사 인생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