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데뷔부터 은퇴까지
아기 고양이를 본 적 있는지? 아직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그 순수한 생명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구별 여행을 즐길 뿐이다. 면접 날 기숙사 현관에 누워 자며 나를 반겨주던 프레즐은 그런 아기 고양이였다. 이제 막 청소년 티가 나고, 아깽이 특유의 하찮은 귀여움이 풀풀 풍기던 때였다.
프레즐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치즈와 크림이에 비하면 가장 늦게 나타난 고양이라고 한다. 아마 프레즐도 독립을 위해 떠돌아다니다 정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넓은 주차장이 있어 오가는 차가 많아 위험했지만, 그만큼 넓은 잔디밭이 있고 먼저 자리 잡은 어른 고양이들은 사납지 않은 데다 오히려 너그러운 편이라 프레즐이 다리를 슬쩍 뻗어보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다 큰 성묘만 있던 기숙사에 아깽이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고 한다. 엄마 고양이에게 경계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것인지 프레즐은 겁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잔디밭 한가운데나 회양목 사이를 파고들어 가 늘어지게 자고, 배가 고프면 삥을 뜯었다. 점잖은 치즈와 소심한 크림이만 보던 기숙사 사람들에겐 후드티에 달린 끈만 살짝 흔들어도 달려들어 뒹굴고 노는 프레즐이 아주 귀여워 보였을 것이다.
기숙사 입주 첫날, 모닝빵을 사들고 기숙사로 들어가던 나도 삥을 뜯긴 적이 있다. 불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이중으로 감싸져 있던 것이 먹을 것이라는 건 어떻게 알고 달려들어 가져 간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고양이가 빵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필사적으로 빼앗다가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줄로 착각해 달려 나온 경비에게 혼나기도 했다.
"자꾸 먹을 걸 주니까 고양이들이 여기에 있는 거 아냐! 털 날리고, 징그럽고!"
아니라는 해명을 들은 후에야 경비는 화가 누그러졌다.
"먹을 거 주지 마세요. 아주 골칫덩이야 골칫덩이!"
고양이의 귀여움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그 말을 듣지 않고 이후에 밥차를 운영하게 된 걸 보면 아마 첫날부터 나는 고양이에게 빠졌나 보다. 어쩌면 경비아저씨의 매정한 말이 고양이들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잠시 정리하자면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며, 오히려 밥을 주지 못하게 하거나 급식소 등을 훼손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정의 민족이자 밥의 민족 한국인으로 태어나 동물이 살 자리를 빼앗고 내가 그 자리에 살고 있다면, 측은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더라도 해는 끼치지 않는 것이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말도 통하겠다, 인간보다야 만만하겠다, 장난꾸러기 프레즐은 고양이에게 장난을 잘 걸곤 했다. 방랑벽이 있던 크림이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치즈였다. 치즈는 아주 점잖았지만 그것이 개구쟁이 프레즐의 타깃에서 벗어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프레즐은 틈만 나면 치즈에게 장난을 걸었고, 치즈는 귀찮아하면서도 한 번도 하악질 하거나 화내는 일 없이 제법 잘 놀아주었다. 요즘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치즈는 당시의 내가 여겼던 것만큼은 노령묘가 아니었을 것 같다. 성격이 진중해서 그렇지 삼촌뻘 정도의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프레즐의 혈기를 나누어 감당하기 위해서 낚싯대를 구매하기도 했다. 선선한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 프레즐과 뛰어놀았다. 잔디밭은 보기에는 푹신해 보여도 잔디가 제법 길고 날카로운 데다 그 사이에 벌레가 많아, 나는 도로로 뛰어다니고 프레즐은 잔디밭 사이로 숨으며 장난감을 사냥하곤 했다. 유독 잔디가 풍성한 부분이 군데군데에 있었는데, 그쪽으로 은신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면 프레즐이 아주 좋아했다. 기숙사 현관 앞 커다란 나무를 둥글게 감싼 잔디밭을 몇 바퀴나 돈 날도 있었다. 분홍색 깃털을 사냥하면 한참이나 가지고 물고 뜯고 뒷발차기를 날리다 기세 등등하게 물고 가, 가장 안 쪽 풀숲에 숨겨두곤 했다. 그걸 빼내는 것도 일이었지만 내겐 모두 좋은 추억이다.
타고난 발랄함과 천진난만함으로 프레즐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가 되었다. 어떤 생물이든 간에 일단 아기라면 마음의 허들이 낮아지는 탓도 있겠고, 프레즐이 실제로 너무 귀여운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을 테다.
치즈와의 산책이 좋았던 나는 프레즐을 데리고도 함께 산책을 다녔다. 고백하자면 산책이라기보다는 걸어가는 프레즐을 천천히 따라간 것뿐이지만. 고양이가 너무 좋아 예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중고 카메라를 구입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고 연예인들을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홈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홈마:'홈마스터'의 줄임말. 연예인의 고퀄리티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
프레즐이 잔디밭을 거닐며 꽃향기를 맡는 날이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에게 위험한 꽃'을 검색했고(고양이에게 대부분의 꽃은 위험하다), 벌레를 사냥하는 날이면 그 벌레의 종류와 위험 여부를 검색했다. 발톱을 쭉 뻗어 나무껍질이나 나무 난간을 긁을 때면 득달같이 '고양이 스크래쳐'등을 검색해보고 습성을 공부하기도 했다. 우리 우주대스타의 건강과 안전, 모든 생각과 그에 따른 일거수일투족까지 남김없이 알고 싶다는 팬의 마음가짐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낼 수 있었다.
프레즐은 어린 만큼 유약했고 때론 칭얼거리기도 했다.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밥을 챙겨주는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리광도 많아졌다. 밥 줄 준비를 할 때면 옆에 와서 나를 툭툭치곤 입만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자 무슨 뜻인지 검색을 했고,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하듯 신뢰도가 높은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최고의 애정표현, 응석 같은 거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난 후에는 얼마나 기쁘던지! 이후로 프레즐이 입을 벙긋대면 똑같이 입을 벙긋하며 웃어주었다.
여느 고양이들이 그렇듯 프레즐도 추운 것을 정말 싫어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잠시 무릎 위에 앉을게요'하고 부탁하는 느낌으로 인간 방석을 사용했다면, 프레즐은 '도와줘요! 살려줘요! 너무 추워요! 안아줘요!' 하는 느낌으로 옷 속을 파고들었다. 귀여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같이 추위에 떨며 파고드는 프레즐을 볼 때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옛 사진을 뒤적거리면서야 프레즐이 마냥 마르지는 않았었구나 느낀다. 하지만 당시에는 치즈와 크림이 사이에 있어서 그랬는지, 프레즐이 정말 홀쭉하고 말라 보였다. 그런 프레즐이 9월경부터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내가 밥을 챙겨준지 5개월 만의 일이었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기 때문인지, 퇴근하는 사람과 야식을 배달받는 사람과 한 잔 마시고 오는 사람들로 로비가 북적여서인지는 몰라도, 크림치즈프레즐은 특히 저녁이 되면 기숙사 현관으로 더 잘 모여들었다. 사람이 많은 것은 뭔가 얻어먹을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 물론 나도 이 저녁시간에 아이들에게 밥을 주었다.
문제는 프레즐이 통통 해지다 못해 과하게 뚱뚱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군살 없이 날렵(?)했던 프레즐에게 뱃살이 처지기 시작하자 나는 걱정되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임신일 수도 있겠다고 해서 겁이 덜컥 났다. 정말 임신인가?
프레즐은 이제야 아기 고양이 티를 벗고 있었으니 발정이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크림이의 땅콩은 매우 포동포동 튼실했다. 크림이가 그랬나? 새로 태어날 아기 고양이가 귀여울 것과는 별개로 고양이에 관해 모르는 게 천지였던 나는 걱정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프레즐도 아직 아기인데 건강이 상하면 어떡하지? 밥은 더 고영양으로 줘야 할까? 출산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산후조리를 어떻게 챙겨줘야 하려나? 고양이가 늘어나면 기숙사 측에서 전부 내쫓을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프레즐의 뱃살을 보고 모두가 임신을 한 것 같다고 했으므로, 나는 고양이 이동장을 주문했다. 병원 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인터넷을 뒤져 가까우면서도 진료를 잘 봐준다는 병원의 목록을 추렸다. 용인은 비교적 길냥이에게 대한 시선이 극과 극이지만, 그만큼 체계를 더 잘 갖춘 것 같았다. 그러나 병원만큼은 찾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2018년 10월 6일, 이동장이 도착한 후로 휴무날만을 벼르고 있던 나는 프레즐을 이동장에 넣고 콜택시를 불렀다. 이동장이 배송 온 날부터 친해지고 겁먹지 말라고 밥 먹을 때도 가지고 내려가고, 안에 넣어서 밥도 먹였었는데 역시 실전은 달랐다.
프레즐은 생각보다 얌전히 이동장에 들어갔지만, 막상 갇힌 것을 알게 되자 크고 구슬프게 울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부끄러움을 참으며 옆에 앉아 프레즐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결국 프레즐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이전에 들은 적 없이 우렁차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처량 맞게 울어대며 이동장을 뜯고 몸부림을 쳤다. 택시 안에는 프레즐의 털이 휘날렸다. 이쯤 되자 민망한 건 둘째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잘 받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방이 흔들리지 않도록 힘겹게 안아 들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얘가 임신한 것 같아서 기본 검진받으러 왔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간단한 문진을 한 다음 초음파 검사를 하기로 했다. 프레즐은 정작 병원 진료를 받는 동안은 천사같이 아주 얌전했다. 배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털을 눕히고 초음파 젤을 바르는데, 차갑다고 "야옹"한번 운 것이 다였다. 하늘을 보고 누워서 초음파 검사하는 내내 두리번거리기만 했을 뿐, 저항 한 번 없이 누워 있어서 테크니션 선생님도 예쁘다고 볼을 긁어줄 정도였다.
초음파를 보는 동안에 나는 희망찬 생각에 빠져있었다.
'저게 아기인가? 저건가? 몇 마리일까? 출산은 언제쯤 할까? 그런 것도 알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프레즐을 보고 있는데, 수의사 선생님이 자못 심각하게 질문하셨다.
"얘가 언제 교배했는지는 모른다고 하셨죠? 언제부터 배가 불렀나요? 밥은 잘 먹나요? 혈뇨를 보지는 않나요?"
쏟아지는 질문 세례 속에서 나는 한 달 반쯤 전부터 프레즐의 배가 불러오고, 그때쯤부터 원래는 잘 만질 수 있었던 배를 못 만지게 한다는 것만이 떠올랐다.
"얘가 길고양이라서요, 저는 밥만 주고요.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는데 왜 이리 미안하고 안쓰러운지 몰랐다. 더 잘 관찰하고 아껴줬어야 했는데 난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초음파 검사 결과 배에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배가 이렇게 불렀는데도 아기가 없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으며, 심각한 상황일 경우에는 복수가 차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비용을 더 지불하고 추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X-ray 세 장과 혈액검사인데 그럼 총액이 거의 20만 원 가까이 나온다고 한다. 겨우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받으며 일을 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잠시나마 했다는 사실조차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내가 굶고 말지 이것도 못해주겠어?'
추가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프레즐은 안쪽 검사실에서 X-ray를 찍고 피를 뽑힌 채 돌아왔다. 그런데 엑스레이에서도 아기는 보이지 않았고, 상황은 심각해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X-ray상에서 복수도 확인되지 않아 더 정확한 정밀검사를 위해 큰 병원의 진료를 권유를 받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생각도 거치지 않고 말했다.
"근데 얘, 여자애긴 한 거죠?"
수의사 선생님과 테크니션 선생님, 말을 꺼내놓고도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나까지. 우리 모두는 잠시간 벙쪄있었다.
"아……."
테이블 위에서 5초간의 빠른 검진이 끝났다. 프레즐은 수컷이었다.
안도감이 몰려오는 동시에 인생 최고의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하는 나와, 아니라고 자신도 몰랐으니 더 죄송하다는 수의사 선생님은 인사 배틀을 벌였다. 위로와 사과의 의미로 초음파 가격을 제해주시기로 했다. 그냥 살이 찐 것 뿐이었던 억울한 프레즐만 가운데에 끼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료실이 정리되는 동안 프레즐은 혈액검사 후 지혈했던 솜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양이 대기실에서 프레즐과 수납할 차례를 기다렸다. 벽 너머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얘 임신한 거야?"
"아니, 수컷이었어."
"뭐라고!?"
"임신해서 어째, 하하~"
정답고 즐거운 대화 소리에 나는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조차 고개를 푹 숙이고 민망함을 다스렸다. 그런데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프레즐은 아프지 않아!
엄밀히 말하자면 프레즐이 아주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통통한 것에 비해 영양상태는 좋지 않다고 해 당분간 간식 금지령과 식욕 돋우는 약을 처방받았다. 다행히 모두들 프레즐이 정말 천사같이 얌전하고 착한 고양이라고, 모든 고양이들이 프레즐처럼 얌전하면 진료하기 너무 좋을 거라고 칭찬해주셨다. 프레즐은 착하니까 약 먹이기도 쉬울 거라고도 했다. 실제로 간식에 섞어주면 코앞에서 섞었는데도 약이 섞여있는지 모르고 신나게 먹어주는 착한 먹보였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프레즐은 귀가한다는 것을 아는지 택시에서도 조용했다. 어쩌면 폭풍 칭찬을 받아 으쓱해진 어깨가 프레즐을 점잖게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일련의 사건들로 놀라고 지친 것일 수도.
이 날의 TMI는 프레즐은 수컷, 복부 내장지방 4cm, 몸무게는 5.48kg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 사건을 생각하면 민망하고 웃기지만, 이렇게 우스운 해프닝으로 끝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기숙사에 돌아온 프레즐은 내게 삐졌는지 간식 봉투를 흔들어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괜히 혼자 멀찍이 떨어져 병원 냄새를 지우기 위해 열심히 그루밍을 해댔고, 프레즐 못지않게 지쳤던 나도 기숙사로 돌아가 단잠을 잤다. 다행히 저녁 즈음에는 프레즐의 화가 풀려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신나게 장난을 쳤다.
프레즐의 임신 사건으로 나는 고양이 성별을 확인하는 방법을 다시 공부했고, 크림이에 비해 땅콩이 작긴 하지만 프레즐과 치즈 모두 수컷이라는 것까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크림이가 식탐이 많다고 했던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프레즐도 만만치 않다. 다만 프레즐은 입이 짧고 사료보다는 간식에만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오고 가며 주는 간식은 무조건 받아먹고, 정작 내가 챙겨주는 사료는 배부르고 맛없다고 맛만 보다가 슬쩍 밀어놓았다. 그 때문에 '고양이를 생각해 사비 털어 간식을 샀던 그 마음으로 고양이 간식 금지에 협조해달라'라고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이 보는 페이지에 글도 남겼었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프레즐의 얼굴을 보면 저절로 주머니의 간식에 손이 가는 것도 사람 마음인 것이 당연지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앉은자리에서 츄르만 네댓 개 받아먹는 게 일상이었던 프레즐은 그렇게 날로 뚱뚱해져만 갔다.
사랑받는 아이돌의 숙명이었을까? 프레즐은 점차 비만 고양이가 되어갔다. 뚱뚱해지니 저절로 게을러졌다. 간식만 먹고 잠만 자는 고양이는 날이 갈수록 살이 쪘고 기숙사 아이돌도 옛말이 되었다. 고양이는 살이 쪄도 귀엽지만 간혹 욕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데뷔부터 함께했던 찐 팬의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다.
퇴사 후에도 나는 여전히 고양이들을 보러 기숙사에 방문한다. 훌쩍 떠난 치즈를 기다리고, 남아있는 프레즐과 크림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다. 프레즐은 아주 게으르고 나태해졌다.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치즈 고양이답다.
살이 찌면서 운동량도 급속히 적어져, 이제는 장난감은 눈으로만 쫓을 뿐이다. 가까이 들이밀어줘야 겨우 뒷발로 팡팡 때리고 살짝이라도 멀어지면 팔을 뻗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프레즐. 왕년에 같이 저녁 운동을 달렸던 사이인 나는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즐은 여전히 전성기 때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뱃살이 무거워 서 있을 때도 땅에 닿을 정도고, 몸이 무거워 뛰지 못하고 걸을 때도 뱃살을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다. 그런데도 내 눈에 보이는 프레즐은 여전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다.
다른 곳에 입사하고 일을 하느라 매달 하던 방문이 몇 개월 뒤로 미뤄진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프레즐은 변명해 줄 수 없을 정도로 비만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문득 내가 괜히 챙겨준답시고 위선을 떠느라 평생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프레즐의 야생성을 빼앗고 사람에게만 의존하게 만들었나 싶어 살짝 울었다. 뚱뚱해진 프레즐과 좋지 못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건강 상태, 사람이 챙겨주지 않으면 밥도 굶을 그 모든 상황이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다행히 내 뒤를 이어 밥을 챙겨주는 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프레즐의 버릇을 잘못 들여놓은 것 같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프레즐은 야생성이 떨어지고 응석을 잘 부리는만큼 집에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던 순간부터 치즈크림프레즐을 모두 입양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준비 없이 입양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다고 생각해 대책 없이 데려오는 것보다는 프레즐과 크림이를 보러만 다니는 중이다.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돈을 많이 벌어 크림이와 프레즐까지 입양하는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