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나의 모든 계절의 아버지

by 쉬움

봄이 되면 아빠가 생각난다. 나른하고 따뜻하던 그 봄날은 이제 그가 떠난 잔인한 계절이 되었다.


여름 내내 뜨거운 햇살 아래 새까맣게 그을린 그의 얼굴. 밤이면 그 아비를 기어코 뉘어 머리카락 속에 숨겨진 새하얀 이마를 들춰본다. 오이를 따느라 익은 그 얼굴에 그놈의 오이를 시원하게 올려준다. 여름 오이 냄새, 아빠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벼를 말리고, 감을 따 곶감을 만들며 유독 더 부지런을 떤다. 곶감이 채 다 마르기도 전에 몰래 반시를 빼먹는 그의 딸과 가을 내내 실랑이를 벌인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이 되면 곶감이며 볶은 땅콩, 군고구마를 밤마다 선물처럼 꺼내온다.

가을은 내일을 준비하는 아빠의 계절이다.


세상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도 아빠의 손은 쉬질 않는다. 손수 만든 연과 썰매는 우리의 놀이가 되고, 방 안을 가득 채우던 고소한 주전부리는 긴긴 겨울밤 이야기꽃이 된다. 겨울방학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던 아빠의 계절이다.


그리고 다시 봄,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일어나 언 땅을 일구던 아빠가 생각난다. 아니, 애당초 나는 단 하루도 아빠를 잊은 적이 없었구나.


나의 모든 계절에 나의 아버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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