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첫머리만 생각하다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1.글의 첫머리만 생각하다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방식대로 보낼 수 있는 하루 중 최악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벌써 그런 식으로 6일이 조의 손 틈새에서 모래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듯 달아났지만, 조는 한 톨도 붙잡지 못했다. 방금 이 페이지를 펼친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Scribblers' 매거진의 5년 차 칼럼니스트 조 라이터는 현재 6일 동안 한 문장에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물론,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기본에 충실했다. 적어도 아침 아홉시가 되기 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았고, 맘에 드는 글이 하늘에서 그녀를 만나러오든 아니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열두시가 되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하루~이틀쯤 되었을 땐 '그래, 예전에도 그랬잖아.' 하고 넘겼고, 사나흘쯤 되었을 땐 '괜찮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하며 자리를 뜰 수 있었지만, 닷새가 지나고부터는 얘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이는 조의 방식대로 얘기하면 '사소한 비극'의 시작이다. 그렇다. 그녀는 지금 '비극의 상태'를 겪고 있다. 웬만하면, 이런 비극이 그녀를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하얀 화면에 '글의 부재'가 닷새를 넘기는 일은 적어도, '조 라이터'에게는 예외였다. 가장 쓰기 어렵다는 모든 말의 시작인 '글의 첫 문장'이나, 글의 중심을 꽉 쥐고 있는 주제어나, '이 얘기는 이렇게 끝나야 해'라며 결론을 짓는 말이나 뭐든 한 문장이라도 있어야 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없다.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조 라이터가 '사소한 비극'에 몸을 비틀듯 만년필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조는 6일 동안 아무 말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바보 같은 자신의 머리를 만년필 뚜껑으로 쿡쿡 찌르며 시계를 봤다. 분침이 하품 3번만 하면 오후 3시가 된다. 그리고 지금쯤, 수화기에 손을 얹고서 하루의 고단함을 조에게 퍼붓고 싶어 하는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 올 것이다.
'정말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조는 자신의 머리에서 손을 내릴 수가 없다. 손을 내리는 순간, 머리가 로켓처럼 고공비행하여 곧 대기층을 뚫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지금, 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해리 포터의 마법 지팡이? 머리에 대고 Alohomora(알로 호모라/ 자물쇠를 여는 주문)라고 외쳐야 할까?아니면, 알라딘의 지니? 주인이 되면 소원을 3개는 들어준다지. 뭐라고 소원을 빈담? 지니가 들어줄 정도의 소원이라면적어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마스터피스 1,2,3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작가라면 두고두고 회자될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대표작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천국에 가서도 통장에 돈이 계속 들어오지!) 맞다. 지니는 남이 나를 사랑하게 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흠.. 이것도 해당이 되려나? 만일 안된다면, 아담 샌들러가 나왔던 영화<클릭(Click)>의 리모컨은 어떤가?시간을 되감든 앞으로 가든 정지하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세시가 되기 전에 시간을 딱!
따르릉
멈출 텐데..
따르릉
아담 샌들러의 리모컨이 없으니, 아쉽게도 그녀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유감이지만, 그녀는 이제 다이앤이 쏘는 총이나 맞아야 할 것이다.
"라이터 집입니다.""우리 친애하는 칼럼니스트 미스 조 라이터." 얼굴을 안 보고 있는데도 보고 있는 듯한 싸늘함은 대체 무엇인가."네, 친애하는 에디터 다이앤.""내가 전화한 이유는 잘 알겠지." 준비해야 한다. 곧, 총알다발이 쏟아질 것이다."그럼요. 잊지 않도록,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전화주시는걸요.""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가 미스 조 라이터? 분명히 어제 뭔가를 썼다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조금씩 피치가 올라간다. 곧 쏟아진다."아.... 그랬죠." "그랬죠? 내가 아는 문법이 맞는다면, '그랬죠'라는 과거형인 것 같은데. 미스 조 라이터?" 아, 한가지 더. 다이앤이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예의를 차려 부른다면, 역시 피해야 할 징조이다. 그리고 다이앤은 2분 남짓한 통화 동안 3번 불렀다. 이것은?"다이앤. 난 정말 쓰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뭐, 집에서 놀면서 시간만 더 달라고 하는 줄 알아요? 매일같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미스 조 라이터!!!!! 당장 내 사무실로 와!!!!!!!!!!!!!!!!!"
Dis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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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요?! 다이앤, 정말 난.." 다이앤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을 들었다. 무슨 뜻이지? 다이앤이 한발 물러나겠다는 것인가? 백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조 라이터, 그녀인걸?"조..." 오, 이젠 그녀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가 두 손으로 조의 손을 잡는다. 뭐야, 이 여자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아침마다 갈아먹는 샐러리 주스에 Xanax라도 넣어 마신 거야?"조, 괜찮아." ....?"정말 괜찮으니까 나에게 얘기해. 다 털어놔.""뭘요?""요즘 자기. 자네 같지가 않아. 자기를 보면, 요즘 뭐가 떠오르는 줄 알아?""뭐가 떠오르는데요?""배. 목적지를 잃은 배. 방금 출항해놓고선 금방 목적지를 잃어버린 배. 이런 배가 자기는 어떻다고 생각해?""음.. 글쎄요. 목적지를 잃었다면 출항의 의미가 없는 거겠죠. 갈 곳을 잃어버린 배니까요.""맞아. 의미가 없어. 아무 의미가 없어. 신나게 연료를 태워가며, 물길을 가르며, 바다를 헤쳐나가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목적지가 없으니까.목적지를 잃었다는 건 뭘 잃었다는 거라고 생각해, 미스 조 라이터?" 다시 '미스 조 라이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곧, 폭격이 시작되는 건가?"글쎄요.. 방향?""맞아. 바로 그거야!" 다이앤이 제자리로 돌아가 책상을 크게 때렸다. 저러면 손바닥 무지 얼얼하던데?!"자기. 자기는 지금 방향을 잃었어. 즉, 자기는 지금 바다에 나가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야. 자기는 먼저 돌아와야 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난 자기를 5년 동안 봐왔어. 자기가 대학생일 때, 이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와서 그 사슴 같은 눈망울로 이것저것 궁금해하며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왔을 때부터 말이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기를 다 안다는 건 아냐.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인생으로 보자면, 자기는 이제 28살이야. 긴 삶에 있어선 인턴 같은 시기이지. 하지만, 일 얘기로 돌아가자면 자기는 이 'Scribblers'의 5년 차 칼럼니스트야. 이제 막 7년 넘은 회사에서 자기같이 버티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 자기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봐. 들어오고 나서 드나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봐. 처음은 호기로웠지만,결국엔 모두들 떠나갔어. 어느 바닥이던 그렇지만 글로 먹고사는 이 바닥도 결코 쉽지 않아. "이렇게 호통치듯 사무실에 불러놓고 휴머니즘 넘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그래서 저 지금 잘린 건가요, 다이앤?""아니, 아니. 그건 아니야." 다이앤이 양손 저어가며 해고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감봉?" "아니 아니. 내가 너랑 돈 얘기를 하자고 항해 같은 얘기를 했겠어? (네.)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미스 조 라이터? (네?)""네? 아.... 글로 먹고 사기 힘들다고요.""아니, 그전에"".. 사슴 같은 눈망울?""그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군. 넌 방향을 잃은 배라고. 돌아와야 한다고." 오케이. 난 방향을 잃은 배이다. 방향을 잃은 배. 돌아와야 한다. 어디로? 난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잘 생각해 봐. 넌 예전 같으면 그깟 '특집 칼럼' 일주일만 주면 6페이지쯤은 뚝딱 써왔어. 대충, 이런 식으로 될 거라며 주제나 단어를 던져주고메인 컬러, 느낌 정도를 말해주면 넌 잘 믹스해서 근사한 디쉬를 내올 줄 알았지. 마치 넌 3성급 호텔에 있는 4~5성급 셰프 같은 느낌이었어.괜찮은 재료들만 골라잡지 않고, 그게 뭐든 필요한 건 네 손뿐이다 하는 느낌이었거든. 난 이 바닥에서 25년을 있었어. 너 같은 진주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어? 넌 진짜야, 조 라이터. 너의 성(氏)부터 봐. 라이터잖아. 넌 글을 쓸 운명을 타고난 거야.""뭐,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제 성씨를 고른 건 아니니까.""조. 난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어. 우리가 평소에 이런 대화를 자주 했다고 생각하니?" 절대 아니죠."저번에 뭐라고 했어? 일주일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일주일을 줬었지? 그리고 네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일주일을 더 줬어.네게 2주의 시간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은 뭐지? Oh, Here We Are." 다이앤이 실눈을 하고 손뼉을 친다. 난 뭐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까."I'm... really sorry"".. So?" So What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유치하게 널 기다려 준 것에 대한 사과나 받자고 널 부른 건 아냐. (정말요?) 다만, 내가 오늘 한 얘기는 잘 새겨들었길 바라, 미스 조 라이터.난 널 특별하게 생각해. 하지만 여기는 직장이야, 조. 널 계속 기다려줄 수는 없어.""알아요, 다이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저도 알아요." 다시 한번, 다이앤이 조의 손을 잡는다."조. 너를 믿어. 넌 이미 소설 2권이나 출간한 작가야. 물론.. 책이 그리 잘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20대에 소설 2권이나 출간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란 건 자기도 알잖아. " 조가 다이앤이 꼭 잡은 손을 내려다본다. 조는 다이앤을 능력 있는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선 그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정말 그녀는 콜드 블러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를 본다면 콜드 블러드라는 말은 접어둘 수 있을 것 같다."고마워요, 다이앤." "난 이 2주 동안의 얘기만 한 게 아니야. 넌 그전부터 방향을 잃은 배였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부디 글에 대한 너의 연료가 5년짜리였다는 말은 말아줘. 네게 실망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이앤이 자리로 돌아가 파일들을 훑어보고 서랍에 넣는다.".. 다이앤?" "응?""그렇다면, 저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 다이앤이 이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 조를 보며 씩 웃는다.
"그건 너만이 알 수 있지. 하지만, 지금 모른대도 좋아. 내일은 11월 1일이잖아. 광장에서 찾게 될지도 모르지. 내일은 광장에서 <올해의 Sisu>가 출제되는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