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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y


2하얀 눈이 온 마을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태양이 햇빛으로 수를 놓았다. 조는 이보다 더 찬란한 겨울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조는 aika 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겨울에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문만 열면 펼쳐지는 마을을 따스하게 덮은 새하얀 눈을 보라.어떻게 이 광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조는 aika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여태까지의 조의 삶은 aika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다.매일같이 지나다녔지만 매일같이 새롭게 보이던 학교길 (올려다보면 피어있던 단풍잎은 매우 시적이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엄마가 만든 샌드위치와 아빠가 만든 딸기 주스(혹은 오렌지나 사과주스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융통성 있게 그날의 냉장고 상황을 따를 줄 알았다.)를 들고갔던 광장의 햇살 냄새나는 들판 그리고 조의 대학생 때까지의 입학식과 졸업식이면 잊지 않고 갔던 조가 제일 좋아하는 커스터마이징 피자집'I LOVE YOUR PIZZA'까지 모든 조는 aika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조는 문 앞에 서서 마을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모든 삶이 한마을 안에 있다. 이것이좋은 것일까? 안 좋을 것일까? 조는 알 수 없었다. aika 마을은 작은 곳이다. 조가 자라면서, aika 마을도 함께 자랐으면 좋았겠지만 aika 마을은 그러지 않았다. aika 마을은 늘 작은 채로 있었다.어린 시절의 조가 봤던 그대로 있었고, 조는 커서도 aika 마을의 '작음'을 사랑했다. 물론, 이제 자신이 입기엔 좀 작아진 옷이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조는 개의치 않았다. 조는 이 '작은' 사이즈가 조 라이터 자신의 사이즈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조는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찾아서는 대신, 그런대로 작은 옷도 괜찮다며 계속 입는 쪽을 택했다.

조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며 겨울냄새를 맡는다. 정말로 자신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를 위해 가방을 이리저리흔들고 뛰어오던 자신이, 'Scribblers'의 합격 소식을 알려주려고 집으로 달려오던 자신이.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 걸.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여든두 살이 되려면 한참하고도 한참 남았는데 (물론 도중에 실족사나 비행기 추락사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나 의문의 죽음 따윈 없다는 가정하에) 고작 겨울날 눈에 이렇게 감상적이어도 되는 걸까? aika 마을의 겨울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아님, 꿈인가? 그런데 꿈이라기엔 볼이 너무 시린걸?아님... 정말 나 죽은 건가? 사실, 어젯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었던 거야. 어제, 다이앤에게 호출 당했잖아. 다이앤이 어젯밤 '조 라이터'라고 내 이름을 적어도 세 번은 불렀다고. 그리고 그 후에.....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죽은 게 틀림없어!
"안녕, 조!" 가만... 이 목소리는.. 피에르!"피에르!!!!" 조는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로 피에르를 반긴다. 물론, 거의 매일같이 보는 앞집 사는 피에르가 반가워서인지 아님 스물여덟인 자신이 단명하지 않은 것이 기뻐서인지는 (후자 같지만) 조만 알 수 있을 일이다(라고 해두자)"피에르!!!!!!! 나 안 죽었어!!!" 역시, 조 라이터는 배려 깊은 여자이다. "조, 무슨 소리야, 죽다니. 이번엔 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쓰나 보지?" 피에르가 조의 손을 살포시 쥐며 말한다."아니, 아니야. 적어도,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모르지. 누가 쓸 수도 있지. 생각해봐, 내가 여자 주인공이라면 얼마나 그 소설이 흥미롭겠어.나란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꽉 차게 될 거야. 남자 주인공도 필요 없을 테고, 난 단독 주인공이 될 거야." "너라면 그럴 거야, 충분히. " 피에르가 조의 손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며 답해준다. 조도 하얀 털 장갑을 껴서 손 시리지 않은데! 피에르는 스위트한 남자다. 그런데, 너희 둘이 왜 안 사귀는 건데?"장르는... 멜로는 싫어.""왜? 대부분 여자들은 달콤한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아?""그런 건 여배우를 꿈꾸는 여자들이나 하는 얘기야. 제2의 오드리 헵번이나, 제2의 잉그리드 버그만 혹은 제2의 레이첼 맥아담스를 꿈꾸는 여자애들에겐 그러겠지. 하지만, 난 배우가 아닌 작가를 꿈꾸는 여자라고. 또 하나의 할리우드 러브스토리는 필요 없어. 어디서 본 듯한 얘기는 재미없다고." "그럼 뭘 원하는데, 미스 조 라이터?"".. 판타지.!" 조는 결의에 찬 얼굴을 띄고 말한다. 판타지! 그렇다. 조 라이터가 주인공이라면 판타지가 되어야 한다. (다행이다. 나도 판타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주인공 하차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판타지라면 너 같은 주인공한테 딱이지! 일단,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Good, Joe Writer! 나도 조연으로 들어갈 자리가 있으면 좋겠네. 오, 시간 됐다. 벌써 열두시 십분 전이야. 빨리 가자!" 푹신한 눈을 밟으며 두 사람은 광장을 향해 뛰어간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닌. aika 온 마을 사람들이 그곳으로 뛰어간다.어렸을 적, 어머니 말씀을 잘 들었다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가진 말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된다.오늘은 aika 마을의 캡틴 로버트가 <올해의 Sisu>를 발표하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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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Day, Aika!" 열두시를 알리는 시계탑이 울리자, 캡틴 로버트가 미스유니버스의 손 흔들기를 하며 마이크 앞에 선다."Good Day, Captain Robert" aika 마을 사람들은 참 착하다. 어린 시절, 모두 초등학교는 열심히 다녔음에 틀림없다."다행히 오늘은 너무 춥지 않네요. 새벽에 눈이 내려서 좀 걱정을 했는데 덕분에 길이 얼지 않아 다행입니다. 오늘은 11월 1일이지요. 벌써,제가 <올해의 시수(Sisu)> 프로젝트를 진행한지도 올해로 6주년이 되었습니다. 이젠 다들 시수(Sisu)가 무슨 의미인지는 매해 보시는 분들은 매해 듣기에 아시겠지만, 일 년 중 한번 있는 뜻을 새로이 하는 자리니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정의하며 시작하겠습니다. Sisu란 말은 우리 aika 마을처럼어느 추운 나라의 말로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느낀 뒤에도 계속 시도하는 새로운 정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내 힘이 다했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만 버리고 결국엔 아무것도 내 손에 남는 게 없을 수 있단 걸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정신이란 말이죠. 여러분은 이런 정신을 얼마나 갖고 있나요? 여러분의 영혼은 얼마나 강한가요? 저는 이를 젊었을 땐 갖고 있었어요. 많진 않았을진 몰라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도 이 aika 마을 출신입니다. aika 마을은 좋은 곳이에요. 겨울이어도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곳입니다. 저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저랑 같이 나고 자란 셜리가 산증인이죠. (윙크♥)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품었던 이 한 가지가 제가 사랑하는 이 aika 마을을 떠나게 했죠. 이 한 가지 생각이 제가 수없이 드나들었던 익숙한 제 방에서 짐을 싸게 만들었어요, 그것은.."
캡틴 로버트는 잠시 말을 쉬고서 조와 눈을 마주친다. 조는 왜 그랬는진 모르지만 로버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인다.마치, 말을 안 해도 그녀만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다는 듯.
"전 제 평생을 이 aika 마을 안에서만 있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요. 제가 사랑하는 이 aika 마을의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신 제 어머니께서 그러셨죠. 바깥세상은 위험하다고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요. 하지만, 전 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라는 것 때문에 나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과점에서 모락모락 한 빵이 담긴 트레이들을 나르던 25살 청년은 생애 처음 aika 마을을 떠납니다. 그리고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삶을 살았어요. 전 aika 마을 밖에선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제 주위는 전부 다 New로 깜빡였어요. 하지만, 전 괜찮았어요. 왜냐면, 전 그 깜빡이는 New를 보러 나간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전 매일을 기대하며 살 수 있었어요.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며 잠들 수 있는 삶을 얻은 거였죠. 그렇게 제 삶은 바뀌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40년이 흘러 지금은 여러분이 아는 제가 되었습니다.돌아와서 aika 마을의 캡틴 로버트로 살고 있지요. 돌아와서 전 제가 깨달았던 것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직접 시도했고, 경험했고, 실패했고, 또얻었던 것들을요. 그래서 <올해의 Sisu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올해 6주년이 되어가네요. "
캡틴 로버트가 쑥스러운 듯 말을 끝마치며 씩 웃자,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한다. 조와 피에르도 팔짱을 낀 채 그에 박수를 보낸다.실제 aika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중, 넓은 세상을 보겠다고 나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니, 적다. 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거의 같다.시간이 지나며 많은 발전을 하고 모자랄 것 없는 이 좋은 마을을 굳이 떠날 필요가 있냐는 것이 aika 마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학교에서는 세계를 가르쳤지만, 정작 세계를 보고 온 선생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른들도 자신의 자식들을 바깥세상으로 떠미는 대신, 책을 사주었고 요즘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점에선 더욱 가방을 싸서 나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더욱 팽배해졌다.정말 인터넷이란 세상엔 이제 없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우린 화면 속에 검색하면 나오는 세상에 만족하고 살면 되는 것일까? 이걸로 우리의 세상은 충분하고 충만해진 걸까? 조는 생각할수록 더욱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 그동안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창의력을 담아 다양하고 기발한 예술작품을 출품해주었습니다. 이젠 이 자리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네요. 먼저, 재작년 우승자 레이디 조앤, '바다를 사랑하자'라는 메시지의 조개껍데기와 버블 원피스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디자이너다웠어요. 조앤, 그건 당신밖에 할 수 없다는 거 알죠? (조앤은 살포시 긴 속눈썹을 깜빡인다.) 그리고 작년 우승자, 앨런 딜런, 멀리 떠나서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마감 전날 와서는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고, 다른 한 손으로 서류봉투를 내밀었었지. 그리고 그 봉투 안에 들었던 것 때문에 난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딜런, 당신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aika 마을의 소중한 보석이라네. (딜런은 살짝 모자를 들며 감사의 제스처를 취한다.)
그럼, 과연, 올해 2018년의 보석은 누가 될까요? .."
로버트는 그의 소중한 보석, 딜런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뒤로 향한다. 이제 모두들 기다리는 순간이다. 모두가 이 광장에 모인 이유.바로 <올해의 Sisu> 주제를 발표하는 순간이다. 가만 보자, 오, 모두들 손을 비비며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다. 추워서 그런 건가? 아니면, 정말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그런 건가? 아무튼, 알아둬야 할 것이 있는데 이건 골든글로브 시상식도 아니고, 오스카 시상식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한 작은 마을 aika의 6년째 전통(아, 6년은 전통이라고 할 수 없지)이 아닌 캡틴 로버트 배 겨울 축제일뿐이다. (얼음낚시하고 그런 건 아니다)
잠깐, 캡틴 로버트가 금장의 스크롤을 갖고 오기 전,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당신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아니, 뭔가 좀 집중해서 읽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한다.위에서 말하듯, aika 마을도 문명이 발달된 마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은 2018년이다.) 즉, 인터넷이 있다. 그러니까 굳이 마을 사람들을 추운 겨울날, 광장에 집합시키지 않고 인터넷으로 <올해의 Sisu> 주제를 발표했어도 된다는 말이다.aika 마을 공식 홈페이지가 없냐고? 아니, 있다! 캡틴 로버트가 대문을 장식하는 공식 홈페이지가 분명히 있다.그런데 굳이, 왜 모두들 사서 고생이냐고? 그야 aika 사람들은.. 직접 물어보자.
Q. <올해의 Sisu> 주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해도 되는데, 왜 굳이 광장에 모여서 발표한다고 생각하세요?
밥 브라운: 이쪽이 더 재밌잖아요? Face to Face가 중요하다는 걸 캡틴도 아시는 거죠. 이러면서 마을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생기고, 우리도 캡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좋잖아요? 어머 근데 당신, 좀 피곤한가 봐요. 하지만, 그래도 눈 밑은 늘 생기 있어야 한답니다. 외출할 때, 다크서클 컨실러는 잊지 마세요.
Q. <올해의 Sisu> 주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해도 되는데, 왜 굳이 광장에 모여서 발표한다고 생각하세요?
앨런 딜런: Hey, My friendQ : Yes?앨런 딜런: 거기 앉아서 궁금해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네.Q: 네?앨런 딜런: (어깨동무를 하며) 내가 하는 말을 지금부터 따라 해봐.Q: ???앨런 딜런: 두 번은 생각 마, 괜찮을 거~야
Q. <올해의 Sisu> 주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해도 되는데, 왜 굳이 광장에 모여서 발표한다고 생각하세요?
레이디 조앤: 글쎄요, 홈페이지에서 발표한다면 더 편리하겠죠. 그럴만한 이유는 몇 가지라도 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캡틴에게 그럼에도 우리가 다 이 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아주 좋은 이유 한 가지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와서 캡틴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게 제게 있어,충분한 이유 하나랍니다. 어머, 다시 캡틴이 오네요!
."아아, 추운데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니요!) 하하하 (캡틴 사랑해요♥) 네, 저도 사랑합니다♥ (Sweet captain � )그럼, <올해의 Sisu> 주제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의 Sisu 주제는....!"직감적으로 알았다. 어쩌면, 여기 오기 전부터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온 건 그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거인 지도 모른다.조는 솟구치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피에르의 손을 너무 세게 쥐고 말았다."아우, 조, 아파. 너무 그렇게 긴장할 것 없잖아.""올해의 Sisu 주제는..."'그럴 줄 알았다'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번이 진짜다'라는 결의를 불태울 수 있는 단 한 단어.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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