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정말 오랫만이었다.
영화가 다 끝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던 건 정말 오랫만에 있는 일이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 특히 어린 남자주인공의 감정과 동화되어, 그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 같이 쏟아내었던 건 정말 오랫만에 있는 일이었다. 주인공 엘리오(티모시 살라메 役)의 한없이 순수했던 사랑의 상실을 표현하는 그의 눈동자는 날 충분히 그에게 스며들게 만들었다. 뜨거웠던 여름날 그에게 찾아온 태양같던 사랑, 그리고 태양이 지듯 때가 되어 그를 보내야만 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마음을 담아낸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도착하여 평상시처럼 늘어지는 점심 식탁에서 내 옆에 앉았을 때, 그해 여름 우리 집으로 오기 전 시칠리아에 잠깐 머무느라 살이 약간 탔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운 발바닥과 목, 팔처럼 태양에 별로 노출되지 않아서 창백한 빛깔임을 깨달았을 때 말이다.
- 원작 <Call Me By Your Name> 中>
본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아이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로 사랑에 관한 소유, 집착, 욕망의 시선을 탁월하게 표현하였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으로 그가 사는 곳이기도 한 이탈리아 남부의 크레마에서 촬영한 영화이다. 이태리 특유의 평온하며 나른한 여름날의 분위기가 담겨진 본 영화는 17세 주인공'엘리오'와 그의 가족과 여름날 6주동안 함께 지내게 된 '올리버' (아미 해머 役)의 만남에서 시작된 두 남자의 우정과 그 이상으로 서로에게 스며든 감정이 마치 피부에 닿는 여름날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표현된 영화로 일말의 작위감 없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 그대로 담아낸 영화이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연주할게요,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내 손가락이 벗겨질 때까지.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이가 사랑에 닿으면 사랑에 눈이 멀게 되고
사랑도 삶처럼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랑에 몸을 떨고 아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삶이 낳은 감정인 사랑의 당연한 순리일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피워본 엘리오는 그를 처음 봤을 땐 젠체하며 거만하다고 느낀 올리버를 점차 신경쓰게 되고 곧 그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올리버도 그의 마음에 역시 같은 감정으로 답한다. 그리고 그들은 짧지만 뜨거운 시간이 될 6주의 여름날만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나누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가슴으로 누군가를 품으면 가슴 안엔 그 한 사람만을 향한 공간이 생긴다.
그만이 들어올 수 있고, 그만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간지러우면서도 그 사람만 생각하면 따스한 느낌이 든다. 사랑이란 그런거다. 그 사람은 내게 있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하고 그 사람을 품은 나조차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보다 서로에게 특별하고 서로가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주는 특권이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이 의미를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며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됨을 허락하고 그들이 곧 하나가 되기를 자처한다. 둘은 그렇게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이 되어 얼마 남지 않은 여름날을 난다. 올리버가 엘리오의 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왔다 갔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똑같지 않을 것이다.
꿈을 만드는 것과 낯선 추억만 남았다
예정되었던 것처럼, 올리버는 사랑하는 엘리오를 남겨두고 기차에 올랐고 그렇게 둘은 다시 6주 전처럼 서로가 있던 자리로 다시 되돌아갔다. 불과 6주 전엔 서로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둘은 그 전과 같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둘은 서로의 손 끝에 닿았고, 서로가 건넨 감정에 닿았고, 서로가 뿌린 햇살에 닿았다. 그래서 올리버를 떠나보낸 엘리오는 기차역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렇다. 한번 데이면 멀쩡히 잘 지내던 사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엘리오는 자신을 뒤흔든 올리버를 잊지 못하고 어느 겨울날, 곧 결혼할지 모른다는 한 통의 전화에 다시 한번 더 무너졌을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는데 꼭 사랑이 필요조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를 심하게 앓아본 엘리오는 분명 그 겨울을 나면 더 성장해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오고, 또 한번의 찬란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 오면 또 다른 '엘리오'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올리버에게 '엘리오, 엘리오'라며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처럼 또 다른 '올리버'에게도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내어줄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렇다. 사랑을 품은 이로 하여금 심하게 꿈을 꾸게 한다. 그가 나와 하나가 되어 남은 나날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꿈을 꾸게 한다. 그것이 한여름밤으로 끝나던, 평생을 가던 사랑에서 피어난 꿈은 늘 달콤한 법이다. 비록 그 꿈의 끝에서 씁쓸한 맛이 나더라도,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품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의미는 처음으로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해야만 했던 엘리오에게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따사로운 여름날의 햇살처럼 내게 스며든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