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오두막
글쎄.. 신만큼 인간의 정신을 괴롭히면서도 간지럽히게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난 천주교 신자이다. 어려서 세례성사를 받았고 '로사'라는 세례명도 있으며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동자도 다를 것이고, 걸치고 있는 옷도 다를 것이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신을 믿는 방법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각자 자기만의 신께 바라는 건 다를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별다른 경험 없는 시퍼런 젊을 땐 신을 좀 믿다가 이일 저일 겪은 중년의 나이땐 신을 등한시 하고 이제 신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나이가 왔을 땐 다시 신을 믿는다고. 우리 아버지는 독실한 신자이다. 나도 아버지처럼은 아니지만 '그 분'을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가히 추상적이다. 사실,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추상적인 믿음의 시작이잖을까. 그리고 비(非)신자들은 언제나 이 부분을 물고 늘어지며 '그 분'의 존재와 '그 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주춧돌을 늘 흔들고 공격하고 있다. 추상적이라는 말은 비가시적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이며 즉,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 '그 분'이 있다. 인간과 신은 사는 곳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 분'이 예수처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을 굽어살피러 오시지 않는 이상 접점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우리가 그 분을 볼 수 있다면? 즉, 하느님이 내 앞에 인자한 얼굴로 나타나서 내 이름을 부르며
날 그 따뜻한 품에 안아주고 그 분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한다면?
늘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내 앞에 나타나주길 바랬지만, 정말로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TOP100에 든다는 윌리엄 폴 영의 동명소설<오두막>을 영화화한 샘 워싱턴, 옥타비아 스펜서 주연의 영화<오두막>은 신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 저변을 흔드는 물음을 던지며
'믿음'이란 추상적인 의미를 재고하게끔 한다.
사랑하는 아내, 세 남매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매켄지(샘 워싱턴 役)는 어느날 자신의 막내딸이 아동유괴범에게 납치되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되고 그 후 그토록 아내와 믿던 신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왜 당신은 내가 그렇게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내 옆에 없었던거죠?"
그 일이 있은 후, 가정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듯 무너지고 매켄지는 그 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아내 역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가족이 오래도록 한겨울을 보내고 있는 어느날,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맥, 오랫만이에요. 당신이 보고 싶군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있을테니 만나고 싶으면 그리로 와요.
- 파파
평소 하느님을 '파파'라고 부르던 아내. 이런 편지는 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이웃이 아니라면 보낼 수 없는 편지였다. 과연, 누가 보낸걸까? 그들을 잘 아는 이웃이? 아니면 정말로 우리의 '파파'가? 다음 주말, 매켄지는 의문의 편지를 손에 쥐고 오두막으로 찾아간다. 나를 초대한 '그'를 보기 위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천주교 신자이며 본 영화와 원작도서도 챙겨봤다. 결국 둘 다 보고서 든 생각은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얼마나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 영화의 문제는 '신'이라는 추상적인 존재에서 오는 난해함이 아닌 본인의 가슴 속에 내재한 '신'에 대한 의심에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이 이 이야기에 발을 담갔다면 당신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매켄지'가 되는 것이다. '매켄지'도 처음엔 오두막에 발을 들이고 하느님, 예수님, 그리고 눈물과의 만남을 믿지 못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들과 함께 지내고 조금씩 대화를 이어나가며 그간에 쌓였던 울분을 그들에게 토로한다.
"당신이 정말로 날 사랑하고 살핀다면 왜 내 딸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할 때 지켜주지 않았나요? 왜 우릴 고통 속에 내버려두었나요?"
가족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그 장소 <오두막>으로 매켄지를 초대하고 이제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해나가길 바라는 하느님. 이 <오두막>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신과 매켄지가 나누는 대화로 이뤄지며 매켄지는 처음에 원망으로 가득찼던 마음에서 서서히 그 분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는 비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신에 대해 완벽한 믿음을 지닌 것도 아니고 비종교인이라고서 신께 기도드려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는 신이 실로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보다는 '믿음'과 '의심'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의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매켄지가 된다. 그럴 때, 우리들은 어디로 향하고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가. 사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어쨌거나 모두 추상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나도 이 대화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지, 하나 느낀 게 있다면 그럼에도 우리에게 기댈 곳이 하나쯤은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